육영수·김옥숙 여사 한복 맵시 좋아, 이희호 여사는 양장 선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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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22면

한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들은 대체로 검소하고 절제된 패션을 고수했다.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이 패션을 자신의 생각이나 감각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반면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검소한 ‘아녀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역대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을 시대별로 꼼꼼히 살펴보면 그 시대의 패션 성향이나 대통령들의 정치적 성향이 조금씩 담겨 있다. 시대별로 변화해온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룩을 비교해 봤다.

대한민국 역대 퍼스트레이디 패션

입관 때도 한복 차림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오스트리아 출신) 여사는 외국인이면서도 한복을 사랑했던 영부인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었던 한복 중엔 개량 한복이 많았는데, 1950년대 옷고름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짧은 통치마를 즐겨 입던 당시의 유행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보라색과 와인색 계열을 아주 좋아했다.프란체스카 여사는 고인이 돼 입관 때도 한복 차림이었다. 목숨 수(壽) 자가 수놓여진 한복이었는데 이는 생전에 프란체스카 여사가 가장 아끼고 즐겨 입었던 옷이었다.

영부인 패션의 교과서 육영수 여사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신부 어머니들이 유난히 업 스타일 헤어(올림 머리)를 많이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육영수 여사가 만들어낸 유행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부잣집 마나님들이 육영수 여사 패션 따라하기에 동참했을 정도로 육 여사의 패션은 인기가 높았다. 한국의 어머니상을 얘기할 때 육영수 여사를 거론하는 것도 육 여사의 온화한 패션 스타일 때문.

주로 우아하고 단정한 한복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목선과 얼굴선이 아름다워 한복 맵시가 유난히 돋보였던 점도 육 여사의 패션이 두고두고 회자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또 양장을 입을 때도 시폰 블라우스와 플레어스커트·원피스 등 여성스러운 아이템 위주로 선택해 다정한 어머니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한국 ‘퍼스트레이디 패션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인상적인 퍼스트레이디 룩을 선보였다. 육 여사는 그러나 유명 디자이너의 한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직접 옷감을 가져다 개인적으로 옷을 주문해 입는 쪽이었다고 한다.

화려한 스타일 좋아한 이순자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패션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패션을 선호했다. 적극적인 성격만큼이나 패션에 있어서도 본인의 취향을 당당하고 과감하게 드러냈는데, 한복에 금박·은박 수를 놓기도 했으며 치마도 예전보다 훨씬 풍성한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또 공식석상에서 궁중의상인 화려한 당의(여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한복)를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한 외국 순방 길엔 유니섹스룩(여성성과 남성성 한 가지를 드러내기보다는 두 가지를 교묘히 혼합한 스타일)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상에 맞춰 메이크업도 화려했으며 헤어 스타일도 짧은 웨이브 펌으로 육영수 여사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역대 한국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화려하고 과감한 패션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소박하지만 세련된 김옥숙 여사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는 큰 키와 세련된 외모 덕분인지 전문가들로부터 “한복 맵시가 가장 좋았던 퍼스트레이디”로 평가 받는다. 육 여사와 비슷한 노선을 고수하며 제2의 육영수로 불리기도 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보통 사람’ 이미지에 맞춰 주로 흰색·옥색·미색 등의 수수한 한복을 자주 입었다. 헤어스타일도 우아하고 얌전한 단발 웨이브를 고수했다. 화려하거나 패셔너블하진 않았지만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룩을 연출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양장보다 한복을 선호한 손명순 여사
조그마한 체구엔 양장보다는 한복이 어울린다. 키도 커 보이고 후덕한 인상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그 사실을 알았던 걸까? 재임 시절 유난히 양장보다는 한복을 많이 입었다. 한복을 입을 때는 밝고 화려한 컬러를 즐겨 입었고 화려한 수 장식도 즐겨 사용했다. 다만 문민정부 후반부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국민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화려한 한복 대신 차분한 컬러의 수수한 정장을 자주 입었는데 이 역시 한복과 비슷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주로 차이나칼라 스타일의 짧은 재킷과 발목까지 오는 긴 플레어스커트 정장을 즐겨 입었다.

이희호 여사는 진취적 신여성 이미지 강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참모’ 역할도 톡톡히 했던 이희호 여사는 진취적인 성향의 신여성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여성스럽고 우아한 룩보다는 실용적인 스타일을 주로 선보였다. 한복보다는 양장을 즐겨 입었는데 꼭 한복을 입어야 할 때도 전통 한복보다는 활동이 편한 개량 한복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 순방 때는 옷 색깔에 맞춰 흰색·보라·분홍색의 무궁화 자수를 놓아 맵시를 냈다.
양장을 입을 때는 이 여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른 몸에 어울리는 긴 치마와 하이 네크라인 재킷 정장을 자주 입었다. 또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고령이었던 만큼 이를 커버하기 위해 안경을 착용하고 밝은 갈색 헤어를 연출한 점도 이채롭다.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퍼스트레이디들이 즐겨 입는 디자이너의 맞춤 의상보다는 일반인들이 주로 입는 기성복을 주로 입었다는 것이다. 이 여사의 실용적이고 소박한 성격의 일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감한 컬러를 시도했던 권양숙 여사
이순자 여사와는 또 다른 화려한 룩을 선보인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다. 이순자 여사가 금박·은박이나 당의 등 값비싼 소재로 화려함을 과시했다면 권 여사는 컬러로 화려함을 강조했다. 이전에 퍼스트레이디들이 잘 이용하지 않던 빨강·파랑·보라·분홍 등의 원색 한복이나 정장을 공식석상에서 자주 입었다. 또 한복과 양장이 두루 어울려 특별히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지 않았던 점도 ‘권양숙 룩’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평소엔 소박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에 부합하고자 보수적인 스타일보다는 경쾌하고 화사한 스타일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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