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노 31명 단체장 후보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970~80년대 한국의 야당정치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움직였다. 이들 양대 세력은 각각 90년대 초반과 후반 집권에 성공했으나 세력을 확장하는 데는 실패했다. 상도동·동교동계 출신 일부가 국회와 정치권에 남아 있으나 이들 계보가 정치 세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런 가운데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부상하는 세력이 있다.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친노그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2009년 5월 23일)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친노계는 대거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선 친노 인사는 9명이나 된다. 노 전 대통령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유시민 경기지사 후보), ‘왼팔과 오른팔’(안희정 충남·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리틀 노무현’(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등. 지난해 3월 “정치? 하지 마라”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뜻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친노계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많다. 전국의 228개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 후보 중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 ‘노무현 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직함을 선관위에 대표 경력으로 제시한 사람이 22명이다. 차성수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서울 금천구),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경기도 부천시), 염태영·김영배 전 청와대 비서관(각각 경기도 수원시와 서울 성북구) 등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출신들이 수도권 격전지 등에 무더기로 도전장을 냈다. ‘박근혜’와 관련된 직함을 선관위에 낸 기초단체장 후보가 11명임을 감안하면 선거에 뛰어는 친노그룹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이란 이름을 앞세워 광역·기초의원에 출마한 사람들도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광주 서구)을 포함해 29명이나 된다.

이번 선거에만 모두 60명(광역단체장 9명+기초단체장 22명+광역 및 기초의원 29명)의 친노그룹 인사들이 출마한 셈이다. 친노그룹이 지방선거에 ‘올인(all-in)’한 양상이다.

지방권력에 대한 친노계의 도전을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하방(下放)운동’이라 부른다. 중국에서 당원이나 공무원이 관료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농촌이나 공장에서 노동을 하게 하는 말에 비유한 까닭은 무엇일까. 백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무런 끈(세력) 없이 참모 몇 명을 데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집권 후엔 참모 몇 명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퇴임 후 줄곧 강조했던 게 ‘깨어있는 시민’과 ‘시민주권 운동’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참모그룹에선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하려면 ‘밑(지방)으로 가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됐다. 지역에서 정치를 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노그룹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혼재해 있다. 이번 선거에선 ‘상속싸움’이 벌어질 뻔했으나 후보 단일화로 힘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친노그룹의 지방권력 도전에는 이해찬 전 총리의 막후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전 총리는 정당의 경계선을 넘어 친노그룹의 지방 진출 밑그림을 그렸다. 한명숙 후보의 경우는 정치 자금 관련 재판부터 민주당 공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의 TV토론 준비까지 거의 모든 걸 이 전 총리가 챙기고 있다.

그가 대표를 맡은 ‘시민주권’ 모임에는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과 참여당에 있는 노무현 정부의 고위직 출신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제3지대 창당론’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이다. 친노그룹이 같은 정당에서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친노’라는 이름만으로도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게 친노계의 속성인 만큼 특정 국면에서 정치 세력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들이 친노그룹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고위직 출신의 한 인사는 “어떤 후보라도 친노그룹이 밀면 최소 15% 지지율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