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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기업이 대주는 대학 연구비, 얻은 건 학문 발전, 잃은 건 과학자 신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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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정한 동맹
셸던 크림스키 지음
김동광 옮김, 궁리
415쪽, 1만8000원

병원 의사들은 제약사에서 개발한 신약으로 임상실험을 한 뒤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보고서를 만든다. 이는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학적인 절차다. 보건 당국은 이 보고서에 의존해 그 신약이 시장에 나와도 괜찮은지를 판단한다. 그런데 해당 병원 관계자들이 신약 개발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거나 고위 직책을 맡고 있다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과 진 배없는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그것도 미국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에서 말이다. 1980년대 벌어졌던 이 사건으로 하버드대는 윤리 규정과 연구비 후원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했다.

미국 터프츠대 도시환경정책·계획 교수이자 터프츠 의대 가정의료 및 지역사회 건강학과 부교수인 지은이는 산학협력 과정에서 이뤄지는 도덕적 해이에 주목한다. 그는 기업이 대학에 거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경고음을 울린다.

기업은 개발상품의 특허권과 시판 허가를 얻기 위해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검증을 맡은 대학 과학자들이 해당 업체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것은 데이터 조작을 비롯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기업과 대학, 그리고 관계자의 실명을 거침없이 밝히며 실제 문제가 된 사례를 수없이 제시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밀착은 과학자들의 권위는 물론 생존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예로 브라운대 의대 교수였던 데이비드 첸은 94년 한 섬유업체에서 특이한 직업병을 발견하고 이를 흉부외과학회에 보고했다. 대학은 관련 연구비를 해당 섬유업체가 지원했다며 이를 말렸다. 보고를 강행한 그는 재계약 불가통지서를 받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들에게 의존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과연 그 전문지식이란 게 신뢰할만한 것인지에 의문을 던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에는 기업이 제공한 엄청난 연구비가 몰려들었다. 그 결과 얻은 것은 학문의 비약적인 발전이요, 잃은 것은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신뢰라는 게 지은이의 따끔한 지적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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