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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트렌드, 욕망 부추기는 현대 소비사회의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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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파리를 떠난 마카롱
기욤 에르네 지음
권지현 옮김, 리더스북
236쪽, 1만3000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바지에 청재킷(일명 ‘진진패션’)을 입는 일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 요즘엔 그 공식이 깨졌단다. 상하의를 진으로 같이 입는데, 멋스럽게 연출하려면 상하의의 소재와 색상을 다르게 입어야 한단다. 변덕스러운 패션 트렌드의 일면이다.

지은이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욤 에르네는 “트렌드가 가벼운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사회학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취향의 모방과 확산’이라는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트렌드를 잘 관찰하면 개인의 선택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단다. 그러면서 이 책(원제 『Sociologie des Tendances』)에서 트렌드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학적 해석을 소개하고 있다.

다니엘 벨은 유행과 트렌드를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책’으로 보았다. 유행이야 말로 소비자들이 재화를 새것으로 바꾸도록 부추기고, 과거에 귀족만 누린 사치와 달리 사회 각 계층이 공유하며, 현대인에게 자아실현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는 점에서다. 현대인을 ‘고독한 군중’에 비유한 데이비드 리스먼은 유행을 현대인의 소외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개인이 타인의 영향과 시선에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다. 반면 유행에 대한 관심은 ‘새로움에 대한 열정’이라는 점에서 근대성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본 학자(질 리포베츠키)도 있다.

유행은 최대 다수의 욕망을 쥐락펴락하는 변덕스러운 힘이다. 패션산업의 상업주의에 휘둘리다 보면 명품 강박증에 시달리는 ‘패션 빅팀’(패션 희생자)이 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에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선보인 킬힐 ‘아르디마딜로’. [리더스북 제공]

게오르그 짐멜은 트렌드가 사회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을 양립시킨다고 보았다. ‘구별되고자 하는 욕망’과 ‘소속되고 하는 욕구’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트렌드를 따르면서 한 집단의 일원으로 안락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집단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근대사회가 없었다면 트렌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 새로운 사회계층의 탄생이 트렌드를 낳았고, ‘현대인의 무한한 욕망’이 트렌드의 사회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에르네는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 계층은 없다”는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말을 인용하며, 트렌드를 잘 보면 현대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이 분명하게 보인다고 덧붙인다. 현대인이 자유로운 존재 같지만 ‘다수의 욕망’이라는 새로운 권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책은 분량도 적고,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프랑스 과자 마카롱처럼 가벼운 얘기로 시작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단단하다. 패션리더인 모델 케이트 모스 얘기부터 1970년대 트렌드세터들의 아지트였던 프랑스의 ‘팔레스’ 얘기도 흥미롭다. 장 보드리야르·롤랑 바르트 등 다양한 관점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에 저자의 학문적 내공이 배어난다.

저자는 걸핏하면 ‘시대정신’ 운운하며 트렌드를 설명하는 ‘팝사회학’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꼬집는다. 요즘 유행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보다는, 사회 변화의 이면을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반가울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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