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단 3줄짜리 약물규정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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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980년대 후반 A구단에서 뛰었던 B선수는 원정경기 때면 방을 함께 쓰는 C선배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했다. B선수는 이따금 방에서 나는 야릇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선배, 이게 무슨 냄새죠?"

질문을 하면 그 선배는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으며 "애들은 몰라도 돼"라고만 대답했다. 그 선배가 은퇴하고 아예 외국으로 떠난 뒤에야 알았지만 그건 대마초였다.

프로야구는 그 선수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난 뒤 92년 프로야구 규약 제14장 '유해행위'에 마약과 관련된 148조를 만들었다. '프로야구 종사자 중 마약류(향정신성 의약품, 대마 포함)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총재는 영구실격 선수로 지명하거나 또는 이후 직무를 정지시킨다'는 조항이다.

그 규약을 만들고 나서 10년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프로야구 선수가 마약과 관련돼 적발됐다는 소식은 없다.

그렇다고 과연 한국프로야구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규약을 잘 지키는가. 글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그동안 선수들의 마약 복용 여부가 의심스러워 약물검사를 해본 적은 몇번이나 되는지, 정기적으로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무작위 소변검사라도 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10년이 지난 그 단 세줄짜리 규약을 보완하기 위해 정기검사 조항을 규약에 추가시키기라도 했는지를 말이다.

그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앞두고 대표선수 가운데 몇명이 소변검사를 받았다는 것이 프로야구 선수의 약물검사에 관한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국내 선수가 금지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인 적은 없다.

프로야구가 전통적으로 금지약물에 관해서 만큼은 안전지대였던 탓에 이제까지의 무관심이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최근 몇몇 연예인들의 경우에서 보듯 각종 마약류는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또 98년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서 뛰기 시작한 것도 마약류에 대한 주의 환기가 필요한 이유다. 외국인 선수 도입 초반기 몇몇 선수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돈 적도 있다.

또 국내 선수들의 해외 전지훈련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선수들은 외국에서 각종 의약품을 구입해 복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선수들이 복용하고 있는 의약품이 금지약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만 스테로이드(부신피질 호르몬제)나 안드로스탠다이온 등 부작용을 일으키기 쉬운 약품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규정이 필요하다.

스테로이드는 힘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도 선수들의 파워를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키워준다는 점에서 선수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가 복용해 유명해진 근육강화제 '안드로'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는 A4용지 5장 분량의 '마약 정책과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이너리그와 신인, 구단 종사자들까지 정기적인 검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세줄의 규약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도 서둘러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분명히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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