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칸다하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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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프가니스탄 제2의 도시 칸다하르는 기원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다. 동방원정에 나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한 여세를 몰아 동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땅으로 들어와 처음 만난 도시를 '아리아인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뜻으로 헤라트로 불렀고, 그 남쪽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그곳이 바로 칸다하르로 파슈툰어로 칸다하르는 알렉산더란 뜻이다.

평균고도 해발 1천m의 산악도시인 칸다하르는 동서를 잇는 교역로의 요충으로 외침과 내전으로 수없이 주인이 바뀐 비운의 도시다. 아랍인에 이어 칭기즈칸과 터키.인도.영국이 차례로 칸다하르를 유린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가까이는 소련 침공 당시 소련군사령부가 자리잡기도 했다. 모하마드 오마르가 칸다하르를 장악하면서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근거지가 됐고, 탈레반이 항복함으로써 또 다시 주인이 바뀔 운명을 맞고 있다.

'칸다하르'는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올해 칸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 출품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영화는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기아와 지뢰, 탈레반의 폭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세계의 무지와 무관심을 일깨우자는 것이 제작 의도였다고 감독은 설명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최근 영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가 연일 매진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런던 시내 개봉관에는 매일 저녁 '솔드 아웃(매진)'이란 표지판이 걸리고 있지만 혹시나 해서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다.

평소 같으면 한정된 소수의 관객이 보고 말았을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감독으로서는 오사마 빈 라덴에게 고마움이라도 표시해야 하는 걸까.

마흐말바프 감독은 9.11 테러 전에 발표한 '몸통 없는 수족'이란 장문의 호소문에서 은유적으로 "바미안 석불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수치심을 못이겨 자폭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 탈레반의 반문명적 행위를 규탄하면서도 굶주리고 지뢰를 밟아 한 시간에 14명꼴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에 눈을 감고 있는 세계의 이중성에 대한 항거의 소리였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참상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

배명복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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