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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창립 이후 7년 동안 앞만 보고 달리다 처음 갖는 달콤한 휴식입니다."

참여연대 김기식(金起式.36.사진)정책실장이 시민단체에선 처음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안식년을 갖는다.

그는 1994년 참여연대 출범의 산파(産婆)이자 이 단체를 '가장 영향력있는 시민단체'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는 시민운동가. 지난해 총선연대에선 사무처장을 맡아 낙선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9일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로 찾아가 소감을 묻자 "전문분야를 다루는 시민운동에 가장 필요한 것이 학습과 재충전"이라며 "3년전 사무국장 때 안식년제도를 도입했는데 첫 혜택을 받게 됐다"고 겸연쩍어 했다.

참여연대 사무처 내부규정엔 시민단체엔 생소한 '활동기간 3년에 1개월간, 7년에 1년간'등의 유급안식년 제도가 있다. 이 기간엔 월급의 70%를 받는다.

이번 안식년은 참여연대의 동료로 97년 결혼한 부인 문혜진(文惠珍.30)사회복지국장도 함께 갖는다. 김실장은 "결과적으로 가족 안식년이 돼 버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낙선자 명단을 뽑기 위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합숙할 때는 생후 5개월이던 아들 준서도 옆에서 졸며 가장 어린 멤버로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金실장이 젊은 운동권(?)들과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인연합'을 창립한 것은 93년 7월.

그 해 12월 당시 '시민사회, 시민운동'에 대해 같은 고민을 하던 박원순(변호사)현 사무처장과 조희연(성공회대교수)집행위원장을 찾아가 만난 것이 인연이 돼 이듬해 9월 참여연대 탄생의 주역이 됐다.

그는 "94~97년 용산역전 시절엔 상근자 대여섯명이 컴퓨터 세 대를 다투며 사용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등 고생했다"며 "야전침대에서 자다 잠을 깨면 쥐 한마리가 배위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7년 뒤 참여연대는 상근자 60여명, 매달 회비를 내는 회원 1만5천여명에다 기업.정부지원금을 안받는 재정자립도 1백%의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金실장은 "어디서 공부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외국에서 복지.국가재정분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다"며 "재충전을 마친 뒤 참여연대로 복귀해 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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