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류, 일시적 유행 넘어서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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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에 한류 열풍이 뜨겁다. 최근 사진전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욘사마' 배용준 열풍은 이런 한류의 극단적 상징이다. 공항은 그를 보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본 언론은 앞다퉈 욘사마 특집을 다루는가 하면 한 민영 방송사는 헬기를 동원해 호텔 이동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19일 중국 선전(深?)의 한 공연장을 보자. 그곳에서는 올해 월드미스유니버시티 대회가 열렸다. 세계조직위원회의 요청으로 공동 연출을 맡았던 필자는 조직위 관계자들과의 첫 미팅에서 매우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초청가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조직위 관계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가수 대신 우리나라의 가수 안칠현(예명 강타)을 강력히 요청한 것이다. 대회 하루 전 선전에 도착한 안칠현 또한 공항에서부터 호텔, 공연장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국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욘사마와 강타처럼 이제 많은 한국의 스타가 아시아권에서 톱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가요에 대한 인기도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흐름은 항상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배용준과 강타의 열기가 아시아로 뻗어나가듯 아시아권 스타들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인정받길 원하고 있다.

최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아시아 7개국의 톱가수들이 참가한 '제1회 아시아송페스티벌'이 열렸다.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끈 인물은 일본의 톱가수 하마사키 아유미였다. 3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한국 내 일류(日流) 확산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듯 혼신을 다해 공연을 펼쳤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천문학적인 출연료를 요구하는 그는 이번 행사에 개런티 없이 참여했다. 우리의 한류가 큰 바람을 타는 것처럼 일본과 아시아의 대중스타들도 한국에 그들 문화의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 흐름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한류 열풍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류의 진원지였던 중국에서 일었던 한국 스타들에 대한 열기는 불과 5년을 못 가 시들어 버렸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여전히 방영되고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한류는 하나의 유행으로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실패는 왜 일어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에 실패한 때문이다. 한류 열풍을 범국가 차원에서 체계화하고 조직적으로 지원하지 못하고 각 개인의 활동에 맡기다 보니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고 부작용도 많이 일어났다. 한류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천민의식도 한 이유다. 최근 있었던 송승헌의 입영을 둘러싼 파문이 그 대표적 예다. 당시 송승헌을 드라마 촬영 뒤 입영시키자는 측은 한류스타가 출연하지 못할 경우 드라마 수출에 타격이 와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크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문화를 통한 경제가치 창출은 매우 뜻있는 행위지만 차선의 가치다. 만약 송승헌이 입영을 연기하면서까지 드라마에 출연하고 그 드라마가 해외에 수출됐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범법 행위자(?)를 경제적 이유 때문에 보호한 우리 국가와 국민은 어떤 꼴이 됐을까?

일본에서의 욘사마 열풍도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현재 일본에서의 한류는 배용준 개인에 대한 열기로 집중되고 있다. 욘사마에 대한 열풍이 우리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자칫 중국에서의 전철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미 그 조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한류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국 드라마 방영시간이 시청률이 낮은 오전 1시 이후로 편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류 지속을 위해선 먼저 내부를 정리해야 한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그 바탕에서 민간기구와 각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활발하게 교류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욘사마가 탄생하고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

이기진 대중문화비평가·전 KMTV 제작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