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장강(長江)과 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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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1보 (1~21)]
黑. 송태곤 7단 白.왕시 5단

조남철-이창호-송태곤. 전북이 배출해낸 강자의 맥은 이렇게 이어진다. 송태곤7단은 줄곧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고향의 기억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시.도대항전에선 이창호9단과 함께 전북팀으로 나오곤 했다.

송태곤은 만 17세 때인 지난해 후지쓰배 세계대회 결승전에 올랐으나 이세돌9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창호가 17세 때 린하이펑(林海峰)을 꺾고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의 기록을 세웠을 때 이 기록은 영영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데 송태곤이 놀라운 기재(棋才)를 보이며 하마터면 이창호의 기록을 넘어설 뻔했다.

왕시(王檄.20)5단은 소림사로 유명한 허난(河南)성 출신이다. 네살 때부터 바둑을 익혔음에도 프로입문에선 여섯번이나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끈기있는 노력 끝에 간신히(?) '10소호(十小虎)'의 한 명에 들게 됐는데 올해엔 돌연 속도를 내며 중국 내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송태곤이 번득이는 기재로 화살처럼 정상권에 이르렀다면 왕시는 장강의 물결처럼 느릿하게 목표를 향해 흘러왔다고 볼 수 있다. 승부호흡에서도 송태곤이 토끼라면 왕시는 거북이의 느낌을 준다.

울산 현대호텔에 마련된 대국장. 돌을 가려 흑을 잡은 송태곤이 우상 소목에 첫수를 두자 기다리고 있던 카메라의 플래시들이 요란하게 터진다.

'폭풍'이라 불리는 송태곤의 기풍을 생각할 때 초반은 의외로 잔잔했다. 지구력.균형감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왕시가 예상을 뒤집고 먼저 변화를 걸어왔다. 백 18의 끼움. 이 수는 축이 불리할 경우 성립되지 않는 수로 알려져 왔다.

축이란 19로 끊고 21로 이었을 때 22로 모는 축이다. 그러나 왕시는 축이 불리함에도 22로 몰고 나왔다. 흑A는 필연인데 백의 대비책은 무엇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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