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릴레이 사랑이 소년가장 서울대 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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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선생님처럼 훌륭한 교사가 되겠습니다."

이번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사범대 지리교육과에 합격한 유현상(劉顯常.18.광주시 금호고3)군은 7일 교무실로 담임인 최남렬(崔南烈.42)교사를 찾아가 감사의 인사 대신 교사의 길을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동안 부모처럼 뒷바라지해준 崔교사 덕택에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劉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강원도 영월에서 광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지병으로 숨진 데 이어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마저 위암으로 여의었다. 당시 누나 둘은 이미 출가했으므로 영락없는 고아의 신세가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누나들이 살고 있는 광주로 이사, 서강중 3학년으로 전학했지만 사춘기에 당한 충격에다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인지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 때 그를 붙잡아 준 사람은 담임이었던 장영진(39)교사.

방과 후면 으레 劉군을 불러 격려하는가 하면 참고서와 녹음테이프를 건네기도 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짝을 지어주는 배려도 했다. 이 덕에 학기 초 전교 1백9등이던 劉군의 성적은 졸업 무렵 7등으로 뛰어올랐다. 고교에 진학해서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 7월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학교에 전달했다. 월 30만원의 기숙사 비용을 대주던 매형이 실직했기 때문이었다. 수업료는 동사무소에서 지원받고, 다른 학습비용은 학교에서 면제받았지만 누나 가족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이 사정을 알게 된 崔교사가 8월 기숙사비를 대신 내줬고 9월치는 3학년 부장 교사인 정정수(44)교사가 맡았다.

여기에다 14개 과목 담당교사들도 자신들의 참고서를 劉군에게 건네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원본 광주시교육감도 생활비와 격려편지를 전했다.

이같은 격려와 지원 속에 劉군은 이를 악물고 공부를 계속했고 지난 9월 서울대 수시모집에 지원했다. 소년소녀 가장의 경우 1단계 전형의 비 교과영역에서 가산점을 준다는 사실을 崔담임교사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시모집 1단계에 합격한 뒤 친구들과 특별반을 만들어 면접 대비 토론수업을 해왔다. 수능 당일 배앓이로 평소 모의고사 성적에 비해 60점 가까이 점수가 떨어졌지만 합격에 필요한 2등급 자격기준은 획득했다.

합격이 확정된 뒤 劉군은 중.고교 은사들을 일일이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을 잊지않았다.

중3 담임이었던 張교사는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꿋꿋하게 커 대학입학의 꿈을 이룬 걸 보니 오히려 고마울 뿐"이라고 대견스러워했다.

劉군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한때 방황도 했지만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지켜줘 이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며 "은사님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 반드시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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