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벤처다] 上. <메인> 그 활력 살려라! 패자부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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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500여 회원사를 둔 벤처기업협회는 내년 '벤처 실패 백서'를 내기로 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벤처 역사의 굴곡과 실패담을 모아 벤처 창업을 하려는 이들의 반면교사로 삼자는 뜻이다. 중소기업청은 창업 실패사례를 공모해 다음달 1등에 1500만원의 상금을 준다. 값진 실패는 상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당정은 실패 사업가의 재기를 돕는 '벤처 패자 부활'시책을 구상 중이다. 벤처가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다시금 일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움트기 시작한 것이 이런 '벤처 실패학'연구들이다.

◆ '벤처에서 대안을'='다시 뛰자'는 분위기가 근래 벤처업계에 번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벤처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래를 논의하거나 국회.정부 인사들과 정책협의를 하는 자리가 부쩍 늘었다. 벤처기업협회는 최근 벤처업체의 목소리를 '10대 어젠다'로 정리해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2001년 이후 얼었던 업계 분위기가 풀릴 조짐도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20대 코스닥 벤처 가운데 흑자회사는 2002년 5개사에 불과했지만 올 상반기에 11개로 늘었다. 정부의 벤처확인을 받은 중소업체 수도 올 들어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나스닥 시장과 실리콘밸리에 돈과 인재가 되돌아오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김진배(경영학) 고려대 교수는 "산업분류표의 의미가 퇴색할 정도로 새로운 유형의 산업이나 틈새산업.복합산업이 쏟아져 나와 기술주도형 벤처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과 정부는 경제 회생과 성장잠재력 보강에 벤처 특유의 활력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연내 정부 부처들을 망라해 만든 벤처진흥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내년이 벤처 활성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일부 대기업들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출 주도 성장이 투자와 고용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한계를 드러냈다"며 "속도와 유연성이 장기인 다산다사(多産多死)형 벤처 비즈니스가 그 대안으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 과거 실패에서 교훈 얻어야=한편에선 '또 벤처냐'는 비아냥도 적잖다. '벤처'하면 여전히 버블(거품)이나 '묻지마 투자', 코스닥 붕괴, '…게이트'처럼 어두운 말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다는 이야기다. 한국 최초의 벤처붐은 불과 3년도 끌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말았다. 벤처의 이런 '원죄'는 업계와 정부 모두에 적잖은 부담이다.

변대규 휴맥스 대표는 "벤처가 또다시 거품경기나 도덕적 해이를 몰고 올 경우 그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는 '초심(初心)의 실종'을 지적했다. 벤처업계가 요즘 '실패 학습'을 중시하는 것이나 정부가 간접적인 '벤처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겠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연구원의 주현 연구위원은 "업계의 지나친 기대와 정책 입안자들의 과욕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과거의 퍼주기식 지원정책이 재현돼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홍승일.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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