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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견지불견(見之不見) 봉지불봉(逢之不逢)'.

30년간 성철스님을 곁에서 모셨던 상좌 원택스님은 『성철스님 시봉이야기』에서 "(스승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만나도 만나지 못했다"고 썼다. 달마대사를 떠나보낸 중국 양무제의 추모사가 꼭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얘기다.

이 책을 잡으면서 성철스님의 불교철학이나 사상을 기대하는 독자들이라면 책을 놓으면서 원택스님과 꼭 같은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두 권의 책,1백여 에피소드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다 읽고도 불교철학.사상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탓이다.

그저 섬세한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여러 장면이 지나가며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장면마다에서 성철스님과 원택스님이 인연의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담백한 글쓰기 방식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참선 잘 하그래이!… 그리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갑자기 세상이 '큰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 열반의 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생사의 초탈을 꿈꾸는 스님이어선지 열반의 순간마저도 마냥 건조하다.

"야 이놈아" "곰새끼야" 등 당대의 고승(高僧)인 동시에 괴각(乖角.괴팍한 스님)이었던 큰스님의 고함소리만 낭자하다. 육성을 최대한 살린 덕분이다. 그 갈피갈피에서 선승의 깨달음을 엿보고 느끼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원택스님 스스로 솔직 털털한 성격이기에 가능한 글쓰기다. 스님은 "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썼다"고 한다. 분칠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내보여도 한점 부끄럼이 없는 스승의 삶이었다는 자신감, 또 그 이상을 언급하는 것이 스승에 누가 되리라는 조심스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지(남기고싶은 이야기들-산은 산 물은 물)에 장기연재될 당시부터 "인간 성철의 체취(體臭)가 느껴진다"고 말해왔다.

성철스님의 출가소식을 듣고 석가모니에게 복수하겠다던 아버지, 금강산까지 찾아와 "너 만나러 온 것 아니다"던 어머니, 남편을 찾아왔다가 끌려나간 아내, 아버지를 누구보다 미워했지만 결국 출가한 딸. 가족들의 얘기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큰스님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족사는 어떤 서러움 조차 느끼게 한다.

책을 놓으면서까지 무슨 가르침을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면 당연히 '성철스님 책을 읽었는데도, 큰스님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반면 '그저 한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다'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그 여운이 짧지 않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까다롭고 심술 궂은 노스님, 그러나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 이면에 감춰진 선승의 결기를 눈치챌 수 있다. 단박에 깨닫고자 목숨을 내던지는 한국 선(禪)불교의 정신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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