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파라다이스 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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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름도 거창한 파라다이스 빌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년)과 '영원한 제국'(97년)의 박종원 감독은 제목에서부터 명칭과 실체의 충돌을 내세운다. 둘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모순 또한 깊어지는 것. 그만큼 작심하고 달려든다는 각별한 의지를 보여준다.

파라다이스 빌라는 4층짜리 다가구 주택. 감독은 이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빗나간 욕망을 통해 이 시대를 비웃고 있다. 한.일 월드컵 경기가 중계되는 1백분(영화의 배경)과 상영시간을 일치시키는 등 실제성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그런데 영화는 지나치게 핏빛이다. 진정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선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도 상관 없다는 현대인의 생명 불감증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무작정 잔혹한 장면을 나열한다고 설득력이 커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 게임에 패배한 한 고등학생이 사이버 머니를 구하겠다는 일념에서 각층을 오르내리며 벌이는 살인극은 섬뜩한 공포만 줄 뿐 그 이상의 비판적 사유를 끌어내지 못한다.

주인집 남자의 섹스 파트너로 살아가는 옥탑방 소녀, 혼외정사를 나누는 펀드 매니저와 피아노 강사, 에로배우를 닮은 나이트 클럽 아가씨 등 주변 인물들도 생생하지 못하다. 18세 관람가. 7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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