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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더 거두고 수가 양보로 이룬 '건보 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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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1년 거덜났던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 탈출에 성공한 것은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계 모두가 양보한 덕이다. 가입자는 돈을 더 냈고, 의사들은 진료 수입을 덜 가져갔다.

건강보험 정상화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는 등 불안정적인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 적자 탈출 배경=건강보험은 1995년 적립금이 4조12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건실하게 운영돼 왔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의료 이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2000년 7월 의약분업까지 시행되면서 2001년 1조8109억원의 누적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의약분업 실시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병.의원이나 약국에 주는 지출이 매년 3조원 이상 더 들어가게 됐다.

정부는 재정이 위기를 맞자 각종 대책을 시행했다. 우선 2000년 1조5529억원에 불과하던 국고 지원금을 지난해 2조8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담배에 부담금을 붙여 매년 6000억~7000억원을 거뒀고, 보험료도 2001년 20%나 인상한 데 이어 매년 8% 안팎 올렸다. 환자가 병.의원에 내는 본인부담금도 큰 폭으로 올렸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중에서 소득이 있는 30여만명도 보험료 납부 대상에 추가 편입됐다. 소화제나 제산제.종합감기약 등 1300여개의 약품을 건보에서 제외했고, 연간 보험 혜택 일수를 365일로 제한했다. 국고 지원금도 국민 세금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국민 부담은 늘고 혜택은 되레 줄어들었다.

의사들도 동참했다. 1999~2001년 수가(의료행위의 가격)가 50%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2002년에 수가를 2.9% 내렸고, 이후 물가인상률에 못 미치는 2~3%씩의 인상에 동의했다.

◆ 전망=최근 건보 재정 흑자 달성에는 2003, 2004년 불경기가 일시적으로 기여했다.

국민들은 중병이 아니면 아파도 참고 병원을 안 갔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4000억원 이상 재정 지출을 절감했다. 내년에도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경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현상이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가 전체 보험 지출의 21.3%를 차지했다. 매년 24%씩 늘고 있다. 지역건보 재정의 절반(담배부담금 포함)을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도 2006년까지만 적용된다. 특별법 효력이 끝난 뒤 국고 지원이 계속될 수 있지만 그 규모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당장 내년의 당기흑자는 7713억원으로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환자의 부담을 더 이상 늘릴 수도 없다. 현재 총 진료비 중 건보 혜택 비율은 52%에 불과하다.

최근 건보 혜택 비율이 계속 줄어왔다. 프랑스.독일.일본 등은 70%가 넘는다. 내년에 자기공명영상촬영(MRI)에 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험 적용 범위의 확대를 약속한 처지다.

함부로 비보험 행위를 보험에 포함하면 곤란하다. 불필요한 의료 이용과 진료 행위가 늘어나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다. 심각한 질환 위주로 확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우선순위와 범위는 정확히 따져보고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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