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무심 조훈현 vs 야심 창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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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바둑황제'조훈현9단과 '중국랭킹 1위' 창하오(常昊)9단의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3번기가 11일부터 14일까지 상하이(上海)의 화팅(華亭)호텔에서 열린다. 11일과 12일 연속 두판을 두고 1대1이 될 경우 14일 최종전을 갖는다.

2001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할 이 결승전은 내년도의 판도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특히 한국이 세계바둑의 왕좌 자리를 차지한 지가 어느덧 10년을 넘어서고 있는 데다 왕좌를 빼앗으려는 중국의 공세와 야심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 이번의 한판 승부는 내면적으로 '한국 대 중국'의 전면전 양상마저 띠고 있는 것이다.

준결승에서 난공불락의 이창호9단을 2대1로 격파하고 결승에 오른 창하오9단의 사기는 매우 높다. 중국 팬들은 오래 전부터 '세계 바둑계를 안방처럼 종횡하는 조훈현-이창호 사제를 격파해줄 것'을 창하오에게 주문해왔고 이번에 그 염원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

창하오9단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승전 상대인 조훈현을 연구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훈현의 최근 3년간의 기보를 중국 내의 고수들과 함께 분석하며 대응책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조훈현9단은 월드컵 조 추첨을 하느라 부산에 다녀오는 등 바둑 외의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창하오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하지만 조9단은 1989년 잉창치(應昌期)배 우승으로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승부'에선 반드시 이기는 초인적인 승부기질을 발휘해왔다.

또한 제자 이창호9단에게 밀려 벼랑 끝으로 몰린 듯 보였으나 자신의 스타일을 스피드 위주에서 '강력한 전투형'으로 바꾸는 등 놀라운 변신을 통해 지난해와 올해 후지쓰배를 연속 제패하는 천재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조9단은 지난해 창하오와 두번 싸워 1승1패를 기록했다.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에선 졌으나 단판승부인 후지쓰배 결승전에선 승리했다. 지금까지의 총 전적은 일곱번 싸워 4승3패. 전적만 보더라도 창하오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드러난다. 창하오9단은 "나는 조9단보다 젊다. 그만큼 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대국장소가 서울에서 상하이로 전격 바뀐 것도 창하오에겐 유리한 변수다.

조9단은 창하오9단의 바둑스타일이 이창호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수없이 싸워본 스타일이라 익숙하다는 뜻이다. 창하오의 소식을 전해주며 이번 결승전을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조9단은 "북한산을 오르는 게 전부다. 바둑이란 하루 이틀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며 점잖게 일침을 가한다.

창하오는 조9단을 집중 연구하는데 조9단은 무심히 북한산을 오를 뿐이다. 중국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25세의 젊은 강자 창하오9단과 이에 맞서 한국의 왕좌를 지키내려는 48세의 노련한 승부사 조훈현9단. 이들의 승부는 과연 어떻게 판가름날까. 우승상금은 2억원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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