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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괴로워" 폭로 공포증 시달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얼마 전 내 생일 때 일이었어요. 남편이 제게 주려고 근처 꽃집에서 장미를 몇 송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날 밤 인터넷에 어떤 글이 떴는지 아세요? '배우 C씨가 바람이 났다. 어떤 여자에게 주려고 장미꽃을 사 가더라'라고 누군가가 올려놓은 거에요. 참 어이가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가십기자들로 보여요."

"최근 호텔 커피 숍에서 친척 오빠랑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재벌 2세랑 사귄다''남자랑 호텔에 투숙하는 걸 봤다'는 등 비방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서 혼비백산했어요. 그 뒤론 함부로 나다니기가 무서워졌어요."(탤런트 B)

스타는 괴로워-.

'추문(醜聞)''불명예'등으로 번역되는 스캔들(scandal). 최근 유명인들 특히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일상의 담론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 오고 있다.

탤런트 황수정.가수 싸이의 마약 흡입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는 물론이고 정사장면이 담긴 '누구누구의 비디오테이프' 누출 사건이나 심은하씨의 결혼설 소동 같은 사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예인과 그 가족들의 하소연에서 보듯이 요즘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모습이다. 스캔들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사실이 과장되고 왜곡되는 게 다반사다.

'섹스 비디오'가 있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는 여성 탤런트 C씨. 상대 남자가 휴대폰에 남겨 놓은 음란비디오의 신음소리를 어느 스포츠신문 기자가 C씨의 비디오인양 기사화하는 바람에 소문이 확대됐다.

C씨의 어머니는 "우리 가족과 딸의 장래가 걸린 문제를 그토록 무책임하게 다루는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배우 D씨의 부인은 인터넷에 '지금 있는 아들은 D씨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글이 올라오자 갓난 아기 시절 찍은 사진까지 올리며 헛소문을 진화해야했다.

그녀는 "그 동안엔 인터넷에 올라오는 온갖 괴소문에 일일이 대응해왔으나 이젠 지긋지긋하다"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우리 아들까지 시비를 삼는 데 두 손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성봉(서울대 강사)씨는 "연예산업은 저널리즘과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스타란 대중의 영광과 분노를 동시에 받아내는 대상인 만큼 앞으로도 가십을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즘은 더욱 번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스타의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할리우드에서였다. 1926년 무성영화의 스타인 루돌프 발렌티노가 세상을 떠나자 수십명의 여성 팬들이 뒤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무렵을 전후해 할리우드의 대형영화사들은 배우가 대중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상품이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계발하기 시작했다.

영화사들은 자사 소속 배우들을 '띄우기'위해 스타의 전기(傳記)를 조작해서 발행하는 등 '올림푸스의 신'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이렇게 되자 팬클럽이 대거 생겨나고 이들을 위한 연예잡지들이 붐을 이뤘다. 전성기였던 1940년대에는 할리우드에 주재하는 가십전문 기자들이 3백명을 넘을 정도였다. 이런 흐름의 정점에 있었던 스타가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다.

더스틴 호프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가십문화에 포위된 연예인들의 상황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스타는 더 이상 죽을 수가 없다. 스타가 되는 순간 그는 저널리즘에 의해 죽은 뒤 방부처리되기 때문이다. "

해방이후 한국에서 연예인 스캔들 제1호는 1946년 '자유만세'를 만들었던 최완규 감독이 그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와 벌였던 애정 행각이었다는 게 영화사료연구가 정종화씨의 주장이다.

정씨는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억압적인 정치권력과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때문에 스캔들이라고 해도 요즘 수준으로 보면 로맨스였다"면서 "요즘은 대중매체가 늘어나면서 스캔들을 다루는 방식도 점점 자극적으로 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영화제작자는 "최근 개봉됐던 '아메리칸 스윗하트'처럼 앞으로는 자신들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만드는 경우도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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