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벌 만화들 "대박이여 다시한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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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침체를 면치 못했던 올해 국내 만화계의 가장 큰 특징은 '복간 붐'이라고 할 수 있다.

복간은 말 그대로 과거 인기를 끌었지만 절판됐던 만화를 다시 펴내는 것을 말한다. 독자로서는 추억의 만화를 신간으로 만날 수 있으니 좋고, 출판사로서는 홍보비를 따로 들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복간 행진의 가장 큰 주역은 이현세씨다.음란성 논란 끝에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천국의 신화』를 코믹스투데이에서 펴냈다. 1997년 그가 기소된 후 서점에서 자취를 감췄던 것이 '완전 보존판'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씨의 밀리언 셀러인 『공포의 외인구단』 1,2권(세주문화)도 나왔으며 또다른 히트작인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작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허영만.황미나 등 '대어급'들도 뒤를 이을 것으로 알려졌다.

만화잡지 시장이 황금기를 맞았던 90년대 초.중반의 밀리언 셀러를 다시 내는 것도 출판사들의 복간 전략 중 하나다. 서울문화사는 지상월.소주완의 『붉은 매』의 연재를 재개했고 대원씨아이도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당시 권당 10만부를 거뜬히 팔아치웠었다.

일반 출판사들 역시 복간에 뛰어들었다.대표 주자 격인 바다그림판은 '명랑만화'라는 기획 아래 지난 8월 『꺼벙이』『맹꽁이 서당』『5학년 5반 삼총사』등을 내놓았다. 이중 길창덕씨의 『꺼벙이』는 초판 5천부가 소화되는 예상 밖의 성공을 거뒀다.

최근 신문수의 『로봇 찌빠』가 선보였으며 김동화씨의 『요정 핑크』도 곧 뒤따를 예정이다.전문가들은 "판형을 키우고 편집자의 인터뷰와 평론 등을 실은 고급스러운 편집은 복간의 모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만화계에서 이러한 복간 바람이 모두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건 아니다. 한 평론가는 "이제 출판할 콘텐츠가 바닥났다는 방증"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원씨아이 장재용 팀장은 "유명 작품을 복간할 경우 초판 5천~7천부는 거뜬하니까 무리해서 신작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썩어도 준치'라는 심정에서 너도 나도 복간을 하다 보니 복간 전과 후의 차이가 없는 특징없는 복간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완전판'이라는 이름으로 복간된 일본 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컬러 일러스트로 표지를 만들고 연재 당시 삭제됐던 원고를 추가하는 등의 '변신'을 꾀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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