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실리 챙기는 블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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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휴가이던 지난 26일 북아일랜드 왕당파 지도자인 이안 페이슬리(78)목사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과격 공화파인 신페인당을 연정의 파트너로 포용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분쟁 중재자로 나서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원칙을 깨버린 것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정부의 80년 묵은 골칫덩어리다. 영국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왕당파와 아일랜드로 통합되기를 바라는 공화파 간의 유혈충돌과 테러가 계속돼 왔다. 부시의 전화를 받은 페이슬리 목사는 대표적인 왕당파 지도자다.

선명한 노선을 앞세워 페이슬리 목사가 이끌던 민주연방당(DUP)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제1당이 됐다. 그러나 제2당인 과격 공화파(신페인당)를 연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북아일랜드의 무장투쟁을 종식시키려는 평화협상의 진척이 불가능했다. 협상 마감을 앞두고 급해진 블레어는 부시를 압력 수단으로 활용키로 했다.

이 때문에 부시는 협상의 걸림돌인 페이슬리 목사에게 신페인당을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시가 스스로의 원칙을 깨가며 전화기를 든 건 전적으로 블레어의 외교력 덕분이었다. '부시의 애완견'이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블레어는 외교적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영국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수완 때문인지 블레어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의 인기는 야당인 보수당을 크게 앞서고 있다. 28일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노동당은 42%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야당인 보수당은 31%에 그쳤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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