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21. 광저우(2)-골목마다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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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삼성물산 광저우(廣州)법인의 전직원들은 최근 광둥(廣東)성 전역을 뒤지고 다니는 게 일이다. 뭐 팔아먹을 중국 물건이 없나 찾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최근 중국제 신발을 일본에 수출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그전까지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한국 제품을 들여와 중국 시장에 팔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다. 파는 양이나 종류 등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중국 물건으로 거대한 중국, 아니 세계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면 훨씬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텐데. 그러려면 우선 여러가지 걸림돌부터 치워야 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결단을 내렸다.광저우지사를 아예 중국 현지기업으로 바꿨다. 외국 무역업체는 단순히 수입대행만 해야 하고, 현지 마케팅은 물론 현지 위탁생산도 못하도록 꽁꽁 묶어놓은 중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삼성물산 광저우법인 조성연 부장은 "한국서 사서 중국에 파는 것보단 중국에서 사서 중국에 팔고, 나아가 중국서 사서 세계에 파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며 "이를 위해 한국의 종합상사에서 중국판 종합상사로 변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뿐 아니다.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스미토모 등은 이미 5년전부터 중국 지사를 현지법인으로 바꿨다. 온갖 제품이 생산되고 팔려나간다는 점에서 광저우는 특히 종합상사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다.

광저우시와 그 위성도시에 등록된 공장은 공식 집계로 약 38만개. 가내수공업 등 공식 집계에서 빠진 공장이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광저우시는 추산한다. 중국내 전자제품의 50%안팎, 의류의 30%가 이들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뤄자오츠(羅兆慈)광저우시 대외무역경제합작국장은 "광저우에는 중국의 대표 산업 39개 중 석탄산업을 뺀 38개 산업이 모두 있다"며 "이곳에서 못 만드는 물건이나 못 구하는 재료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개발구.○○보세구 등 정식 공단은 물론 골목마다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서 있어 광저우는 '중국의 공장지대'로 불린다는 설명이다. '광저우에 없으면 중국에도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이규남 광저우 무역관장은 "중국 유통량의 40%정도가 광저우를 통해 전국으로 흘러간다"며 "중국을 부채로 비유하면 광저우는 부채살이 모두 몰려들었다 다시 퍼져나가는 손잡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유통시장에서 광저우의 위치는 단연 톱이란 얘기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거대한 시장을 내버려둘 리 없다. 그러나 광저우시장은 외국기업들에 그리 만만치 않다. 우선 중국 기업들이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틈을 주지 않는다.

톈허(天河)구에 있는 톈허과기원은 소프트웨어의 내수 공급기지 역할을 한다. 여의도의 세배 크기인 이 공단에는 1천1백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데 이중 8백40여개가 외국 돈이 섞이지 않은 순수 중국기업이다.

텐허과기원의 단옌쭌(延遵)부주임은 "지난해 이 공단 한곳에서 판 소프트웨어만 57억위안어치(약 9천1백억원)로 2백38억위안의 내수시장 대부분을 중국기업들이 차지했다"며 "중국시장이 탐난다면 먼저 중국기업부터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저우시는 생활잡화 등 소비재 산업은 아예 외국기업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羅국장은 "소비재 산업은 이미 포화상태라 투자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며 "대신 화학.철강 등 공급이 달리는 첨단산업은 계속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뭘까. 8년 전 광저우에 진출해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는 에이스침대의 이한이과장은 "중국 내수용 침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중국기업에서 사서 쓴다"고 말했다.

우선 그래야만 중국기업과 가격경쟁이 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래야만 시장을 지키려는 까탈스런 중국의 관세제도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부품을 쓰면 중국내 판매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이미 관세를 내고 들어온 부품인데도 중국 내수용으로 쓰면 또 다시 잔뜩 세금을 내야 한다. 부품에 일종의 부가가치세인 증치세를 물리고 완성품에도 다시 세금을 물리는 통에 제품값이 평균 30%이상 올라가 수입 완제품보다 값이 비싼 게 보통이다.

李무역관장은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시장은 물론 중국 정부의 특성을 꿰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며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면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재(경제연구소).남윤호(도쿄 특파원).양선희(산업부).정경민(경제부)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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