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교통문화가 국격을 좌우한다 ① 선진국의 어린이 안전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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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계적 금융위기에 잘 대응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도 개최한다. 그러나 교통문화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 한국의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2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4명의 두 배가 넘는다. 교통 선진국인 일본(0.8), 독일(0.9), 호주(1.1), 프랑스(1.2)와의 격차는 더 크다.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를 국정지표로 내세울 정도다. 선진국의 교통 관계자들은 “모두가 합의해 만든 사회적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통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교통문화가 곧 국격(國格)’이라는 그들의 의식을 잘 보여준다. 본지는 어린이 교통문화를 시작으로 5회에 걸쳐 ‘교통문화가 국격을 좌우한다’ 시리즈를 싣는다.

프랑스의 어린이 교통안전 민간단체인 아나텝(Anateep)이 파리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사고가 난 버스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시민단체 등이 연계해 학생들에게 교통안전 교육을 시킨 뒤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아나텝 제공]

지난 4일 오전 8시 프랑스 파리의 후엘 초등학교 앞. 아미나 모키드(40·여)가 아들 오트만(8)의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었다. 모키드는 출근하기 전 매일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다. 프랑스 도로교통법상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보호자가 반드시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하기 때문이다. 모키드는 “오트만이 곧 ‘보행자 면허(permis pieton)’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게 많다”며 “버스 타기, 횡단보도 건너기, 신호등 잘 지키기 등 교통 규칙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보행자 면허는 ‘어린이가 혼자 도로를 걸을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며, 경찰이 발급한다. 이처럼 프랑스의 어린이 교통제도는 ‘아이를 보호한다는 소극적인 안전을 넘어 아이 스스로 도로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의 어린이(14세 이하) 교통사고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2.3명’이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평균은 1.6명이다. 프랑스는 1.5명이다. 국내에서 사망한 어린이 중 대다수는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린이는 모두 154명이다. 이 중 62%인 96명이 보행 중 사망했다.

어린이 보행자 사고가 많은 한국의 현실을 볼 때 프랑스의 교통 교육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파리경찰청 교통안전국 알렉스 푸샤 교육팀장은 “어린이는 잠재적인 운전자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나중에 운전을 할 때도 안전을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초·중·고교에서 반드시 교통 교육을 이수하고 수료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학교 교통안전교육 증명서 제도’가 그것이다. 증명서는 APER과 ASSR1·2로 나뉘어진다. APER은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보행자와 승객에게 필요한 교통안전 교육을 시킨 뒤 발급하는 수료증이다. ASSR1은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자전거·이륜차 안전에 관해 교육한 뒤 발급한다. ASSR2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발급한다. 도로 표지판과 자동차 보험, 술·약물이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 교통사고 현장 보존법 등을 가르친다. 이것이 있어야 자동차 면허시험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자전거 면허’를 발급한다. 독일의 학교법에 따르면 어린이는 8세부터 10세까지 인도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도로에서만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때부터는 지역교통협회가 발급하는 면허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면허를 딸 수 있으며, 반드시 경찰관에게 자전거 안전교육을 받은 뒤 경찰관 입회하에 시험을 봐야 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손주현 선임연구원은 “선진국에서는 ‘교통질서 교육’을 시민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절차로 생각한다”며 “법질서와 약속을 지키는 문화를 배워가는 것이 교통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호주·일본·프랑스·독일=김상진·강인식·김진경 기자 kang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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