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들 ‘10년 후 성장엔진’ 찾아나선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다. 병상(2700개)도 국내에서 가장 많다. 하루 평균 1만 명이 넘는 외래환자가 찾는다. 이런 아산병원이 ‘10년 후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있다. 기업들이 미래 유망 사업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발은 앞으론 진료 수입만으로 먹고살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부터다. 이 병원 최은경(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연구기획관리실장은 “우리 병원은 지금은 밀려드는 환자를 다 처리하지 못할 정도여서 수술실을 늘리면 매출과 이익이 올라갈 수는 있다”며 “하지만 10년, 20년 후에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병원들의 고민도 유사하다.

조우현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은 “진료만 잘 한다고, 암 수술을 많이 한다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지금 방식은 5~10년 안에 끝날 것”이라며 “이제는 질적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답이 연구개발이다. 아산병원이 앞서간다. 지금은 진료 수입이 병원 매출의 95%를 차지하고 연구개발 수입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매년 수백억원씩을 투자해 전체 수입의 20~40%를 연구개발에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블록버스터(세계적인 인기 제품) 약이나 의료기기 개발이다. 이정신 아산병원장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논문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 치료에 필요하고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는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산병원은 최근 16층짜리 연구소 건설을 시작, 내년 9월 문을 열 계획이다. 연구소를 공동으로 운영할 미국 대학병원도 찾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그룹 5대 신수종 사업에 포함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와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조만간 삼성전자·삼성종합기술원 등과 준비팀을 만들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병원이 환자만 보는 시대는 갔다”며 “맞춤형 의약품이나 기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병원들은 벌써 방향을 틀었다.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사선 암치료기인 사이버나이프는 미국 스탠퍼드대학병원이, 토모테라피는 위스콘신대학병원에서 개발됐다. 존스홉킨스병원의 경우 수입 중 진료 비중이 2004년 72%에서 2008년 68%로 줄었다. 대신 기술 판매·특허료·임상시험 등의 연구개발 수입은 10년여 만에 약 두 배가 됐다. 영국은 지난해 케임브리지대 등 5개 병원을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해 매년 약 5억 달러씩을 지원한다. 암·치매·뇌질환 치료제나 기기를 연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연구중심 병원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법적 근거를 만들고 내년에 이런 병원을 지정해 세제 혜택을 주고 연구원이나 기초의학 의사에게 병역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성식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