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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부실 공적자금] 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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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달러당 환율 1천7백원대, 시장금리 연 28%'.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경제상황은 어두웠다. 정부는 누적된 금융 부실을 청소하기 위해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공적자금이 아니었으면 경제 전체로 6백조원의 부실이 터졌을 것이라는 분석(금융연구원)도 있다.

감사원도 29일 "공적자금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조기 탈피에 큰 효과를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감사원 지적처럼 1백50조원의 공적자금 곳곳에 '부실'과 '도덕적 해이'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불을 끄려다 보니 화단도 밟고, 창문도 깨뜨리듯 당시 금융시장 상황이 워낙 다급해 정교하게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이종구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고 강조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안정된 요즘도 공적자금의 운영.관리에는 걷어내야 할 비효율이 적지 않다.

◇ 외면받는 최소비용 원칙=지난 4월 정부는 수협에 1조1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65만 예금자의 혼란이 고려됐다. 수협은 회생비용(6천5백억원)이 청산비용(3천억원)보다 더 드는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막연한 개념을 내세웠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현대.삼신생명 등에 "계약이전 방식이 총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의결했고, 이에 따라 자산.부채를 파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강운태 의원에게서 "금융감독위원회가 '최소비용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 돈 붓고 감시는 소홀=공적자금을 받은 한빛은행은 법정관리 중인 대우자동차에 지난 3월 이후 신규자금 8백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빛은행은 대우차와 경영개선에 대한 서면약정(MOU)을 맺지 않았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는 금융기관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법정관리.화의 업체 중 금융기관에 5백억원 이상 빚을 진 기업에 새로 자금을 지원하려면 반드시 MOU를 체결하도록 돼 있는데 MOU를 맺은 경우는 하나도 없다.

감사원은 "부실기업 중 상당수의 경영 상태가 나빠졌는데도 이를 점검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있는 제도를 놀리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관리.감시가 미흡하긴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평화은행은 올 1,2분기 연속 1인당 영업이익 등 모든 재무비율 목표를 지키지 못했지만 임원에게 주의조치를 하는 데 그쳤다.

관리 소홀은 공적자금 낭비로 이어진다. 공적자금을 넣었지만 은행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아 '감자(減資)'조치로 투입한 공적자금이 날아갔다. 한빛은행 3조2천억원, 서울은행 4조원 등 4개 은행에 투입한 출자금 중 10조원이 이렇게 사라졌다.

◇ 회수 시스템 작동 안해=공적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올 들어 10월까지 2조5천억원을 회수한 데 머물 정도로 회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우선 매각이 지지부진하다. 대한생명과 서울은행은 99년 이후 3년 가까이 매각 절차를 밟고 있지만 팔지 못했다.

재경부 안에서도 "공적자금관리위가 자금 투입 규모를 줄이는 결정은 잘하는데, 다소 값을 적게 받더라도 매각하라는 결정은 여론을 의식해 쉽게 하지 못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이상렬.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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