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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논쟁 한국 지식사회에 불붙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국내 철학자들의 토론 사이트인 '소공동사람들(http://dumdum.pe.kr)'에서 최근 흥미있는 토론이 전개됐다. 주제는 '9.11테러를 계기로 본 미국은 무엇인가'.

9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기고에서 '야만의 방식이 아니라 문명의 방식으로 답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중립적 입장을 취한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왈처(미국 고등학술원)교수와 미국에 가장 비판적인 노엄 촘스키(미 MIT) 교수중 누구의 입장이 옳으냐를 놓고 벌어진 토론이었다.

지난 9.11테러 이후 지식사회는 우선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날아와 부딪치는 엽기적인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에 대한 충격과 함께 북한을 포함한 우리에게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그러나 그 우려가 잦아들자 떠오른 문제는 '과연 테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테러에 대한 보복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과 연결됐다.

그러나 이 마지막 문제는 아직 공식적으로 건드려지지 않고 있다. 자칫 친미.반미라는 잘못된 논쟁구도 속으로 빨려들어갈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차는 세대별.분야별.이념별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지식사회는 미국 지식인의 입을 빌린 '간접화법'을 통해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사실 이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와 그에 대한 평가에는 이미 그것을 선택한 사람의 관심과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로 거론된 사람은 4명의 지식인이다. 가장 먼저 부각된 사람은 『문명의 충돌』의 저자 헌팅턴. 잘 알려진 것처럼 서구문명과 이슬람.동양문명 사이의 충돌을 예견해 서구 문화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이라 비판받아온 헌팅턴은 미국의 보수주의를 대변한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마저 이를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관심은 잦아들었다.

대신 부각된 것은 『오리엔탈리즘』『문화와 제국주의』 등으로 서구인들의 동양관을 비판해온 에드워드 사이드(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대외정책을 제3세계의 시각에서 비판하면서 '테러는 극우파들에게 하나의 선물'이라고 비꼰 촘스키였다.

드러내 놓고 미국을 비판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이들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인식을 비판하는 대리인 성격을 지녔다.

이들에 비하면 보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공동체주의를 '차이에 대한 관용'과 '다원적 평등주의'를 주장하며 진보적으로 자리매김한 왈처의 '문명의 방식으로 답하자'는 합리적이지만 가장 상식적인 편이다.

올 겨울 계간지도 이들을 비롯한 비판적 지식인들이 도배질 했다.『당대비평』(삼인刊)특집 '2001년 9월 11일 이후의 세계'는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로 부상하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 등을 통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당대비평은 아울러 『전쟁과 평화』라는 단행본을 출간해 촘스키와 사이드 등의 글을 싣고 있다.『창작과 비평』(창작과비평사刊)이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라는 특집에 사이드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글을 싣고 있는 것이나, 사이드가 '문명의 충돌'을 주장한 헌팅턴을 비판하면서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을 '무지의 충돌'이라고 비판한 기존의 글을 묶은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김영사刊)이 출간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대리 논쟁은 곧 우리 사회의 논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고려대 임혁백(정치학) 교수는 "미국에 대한 인식의 문제도 지역.이념.세대 갈등과 함께 중요한 갈등쟁점"이라고 진단하고 "이 문제를 우리의 목소리로 다뤄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서로가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한에서만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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