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책 vs 책] 신화 속 괴물에 인간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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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山海經)
정재서 편역, 민음사, 388쪽, 1만5000원

상상동물 이야기
원제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남진희 옮김
까치, 272페이지, 6000원

인간은 간단없이 상상동물을 창조해낸다. 요즈음은 영화가 특히 그 일을 도맡아 하는데 최근에 등장한 상상동물은 골룸과 슈렉일 것이다. 그 전에는 황금박쥐와 크렘린이 있었고 일일이 명명할 수 없는 공상과학영화의 다채로운 우주 괴물들이 있다.
가끔은 문학작품도 상상동물을 만들어낸다. 프란츠 카프카는 ‘육지에서의 결혼준비’라는 작품에서 캥거루의 얼굴에 몇 m나 되는 꼬리를 가진 상상동물을, 에드가 앨런 포는 한 소설에서 고양이 머리에 사냥개의 귀와 눈부시게 흰 피부를 가진 산호 같은 동물을 창조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것이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쉼없이 기괴하고 엽기적인 상상동물을 만들어낼까.
『산해경』과 『상상동물 이야기』는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동서양의 ‘상상동물 동물원’쯤으로 여기며 심심하거나 우울할 때 동물원을 산책하듯 그 책들을 꺼내 읽는다. 낯설고 기이한 상상동물들을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도 즐겁다. 때로는 동서양의 모든 님프·괴물·악마들을 손안에 넣은 듯한 뿌듯함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왜 인간에게는 괴물이 필요했을까.
사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라는 『산해경』을 처음 만났을 때는 충격이었다. ‘신화’라는 이름이 붙은 거개의 책이 그러하듯 그 책 역시 재미와 의미의 보고일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칠 때부터 어리둥절하던 기분은 책장을 넘길수록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이어져 나중에는 아예 막막한 기분이 되었다.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기산이라는 곳인데 그 남쪽에서는 옥이 많이 나고 북쪽에서는 괴상한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양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와 네 개의 귀를 갖고 있고 눈은 등 뒤에 붙어 있다. 그 이름을 박이라고 하며 이것을 몸에 차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 단락이 끝나면 “다시 동쪽으로 380리를 가면……”으로 시작되는, 지리적 특성과 기괴한 상상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책이 끝날 때까지 변주되고 있었다. 머리가 희고 호랑이 무늬에 꼬리가 붉은 말, 붕어의 머리에 돼지의 몸을 한 물고기, 뱀의 몸에 여섯 개의 눈과 세 개의 발을 가진 새……. 『산해경』이 고대 지리서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중국 문명의 다지역 발생론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근거가 되며, 신비주의 문학 예술의 정신적 원천이라는 점은 학자들의 관심 영역일 것이다. 평범한 독자로서 나는 다른 것이 궁금했다. 왜 고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상상동물 이야기』라는 책을 접했을 때는 『산해경』때보다는 덜한 충격으로 그 책을 즐길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풀들을 다 죽여버리고 혼자만 생기발랄하게 자란다는 식물성 양, 동물의 머리를 100개나 달고 있다는 거대한 물고기, 자줏빛 머리에 푸른 눈동자와 이마에 난 뿔을 가지고 있는 일각수 등. 그때는 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130여 종류의 기기묘묘한 상상 동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저자들의 의도를 짚어볼 여유도 있었다. 특정한 상상동물에 대해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정보를 모아 비교 분석한 노고에는 사의도 표하고 싶었다. 위에 언급된 카프카와 포의 상상동물도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동서양의 상상동물들이 서로 닮았으며 그들이 인간과 관계 맺는 방식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인류가 상상동물을 창조해낸 심리적 이유도 짐작할 것 같다. 신화나 설화가 갖는 대표적 기능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삶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는 것이듯 상상동물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기능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즉 인간이 창조한 모든 님프·괴물·악마가 곧 인간의 내면 풍경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선하고/악하며, 분노하거나/온유하며, 유혹적이거나/공포스러운 상상동물의 성격이 곧 나의 내면에서도 감지되며, 또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잘 투영되어 보인다. 신화 속 괴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과 세상의 엽기성·의외성·위험성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화장실 귀신이 유독 중·고등학교 화장실에만 나타나는 이유와도 같으며, 상상동물들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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