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비리 괴문서' 수사 본궤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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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진급 비리 의혹 수사를 불러온 괴문서의 살포자 수사가 궤도에 오르고 있다.

국방부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26일 "그간의 조사를 통해 압축한 40여명 안팎의 군 인사에 대한 휴대전화 통화 내역 조회 승인을 군 검찰에 27일께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조단은 통신사들이 업무를 보는 29일부터 본격적인 통화 내역 조회에 들어갈 예정이다.

합조단의 살포자 조사는 크게 세 가지다. 괴문서가 발견됐던 국방부 외부의 간부 숙소인 레스텔 건물 주차장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신원 확인이 진행 중이다. CCTV가 구형 아날로그 방식이라 테이프의 화면을 확대해도 흐릿하게 나오자, 합조단은 외부 전문 기술자를 동원했다. 수거된 괴문서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지문 감식은 경찰청에 맡겼다. 이와 별도로 합조단은 괴문서에 나타난 표현과 정보, 그간의 제보 등을 토대로 살포 용의자 추적 작업을 하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괴문서는 일요일인 지난 21일 레스텔을 관리하던 사병들에 의해 발견됐다. 사병들은 이를 건물 내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에 버렸고, 뒤늦게 다음날 오전 합조단이 수거해 갔다. 합조단 관계자는 "아직 물증이 명백히 확보되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다음주쯤 용의자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이 문제다. 괴문서를 뿌린 인사들이 확인되면 다른 군 장교나 장성, 또는 외부세력과의 연관 여부로 수사가 확대된다. 개인적 울분을 토로한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인 인사 저항으로 드러나면 군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자칫 군 수뇌부 인사를 둘러싼 군의 '항명' 사태로 번질 수 있다.

한편 군 검찰은 이날 육군본부의 인사 핵심 실무자인 B준장을 소환 조사했다. B준장은 장교들의 보직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육참총장과 직접 대면보고하는 육본 인사의 핵심 장성이다.

현재 군 검찰의 수사 초점은 진급 추천위원회에 올라가는 인사 기록이 특정인을 위해 조작됐을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계좌추적은 현재로선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조작이 확인되면 육본 지휘부의 부당한 압력 여부로 수사가 확대된다. 이는 육본 지휘부에 대한 수사로 직결된다. 군 검찰은 이미 압수된 육본 인사 관계자들의 수첩과 기록에 나온 이름들이 대부분 대령으로 진급한 사실을 확인하고 장성 진급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진급 비리 의혹 수사를 둘러싼 육본과 군 검찰의 대결은 극명하다. 군 검찰 관계자는 "인사 기록을 내사한 결과 이번에 진급된 특정인 기록에서 불리한 사실이 누락된 반면, 탈락자 기록에선 반대로 진급 가점을 줄 만한 내용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군 검찰에 따르면 장성 진급 추천위원회의 회의 장면을 촬영한 CCTV의 테이프도 오리무중이다. 군 검찰은 이 테이프가 폐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테이프의 존재를 확인하고 육본에 "테이프를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육본의 담당자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반면 육본 측은 "올해부터 위원실에 CCTV를 설치했지만 모니터링만 했을 뿐 녹화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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