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건강기능식품 등급제, 있으나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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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강기능식품(functional food)의 효능을 파악하고자 할 때 기자가 자주 애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미국 메요클리닉의 홈페이지(www.mayoclinic.com)다. 이 사이트의 검색란에 글루코사민(glucosamine)을 입력하면 이 건강기능식품의 여러 효능에 대한 의학적 평가가 일괄적으로 제시된다. 평가는 마치 대학의 학점처럼 A·B·C·D·F 등으로 내려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 글루코사민은 가볍거나 중간 정도의 무릎 관절염에 대한 효과 A,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대한 효과 C, 고콜레스테롤에 대한 효과는 D로 평가돼 있다. A는 ‘강력한(strong)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B는 ‘좋은(good)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C는 ‘과학적인 증거가 불분명하다’, D는 ‘해당 효과가 없다는 과학적 증거가 존재한다’를 의미한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과 약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엄격한 임상연구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효능에 대한 시비가 잦은 것은 이래서다.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정보는 아마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산 제품이 정말 내 건강·질병에 유익한가일 것이다. 메요클리닉이 제공하는 이 같은 평가 정보는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제품 구입 전 라벨에 ‘건강기능식품’이란 문구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강조한다. 그런 표시가 없으면 ‘유사 건강식품’이지, 정부가 효능·안전성을 입증하는 건강기능식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자는 우연히 한국식품연구원의 한 직원의 글을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국내에도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나름의 등급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의 등급은 ‘질병발생 위험감소 기능’과 ‘기타 기능’으로 구분된다. ‘질병 발생 위험감소 기능’이 인정된 건강기능식품의 한 사례는 자일리톨이다. 자일리톨을 원료로 사용한 건강기능식품엔 ‘충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음’이라고, 충치라는 구체적인 질병명을 명시할 수 있다.

‘기타 기능’은 다시 3등급으로 세분된다. 1등급은 기초자료와 충분한 인체시험자료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이 제품은 ○○ 건강에 도움’이란 표시를 할 수 있다. 예컨대 글루코사민(1등급)은 ‘관절 및 연골 건강에 도움’, 가르시니아 캄보지아 추출물(1등급)은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라는 표시가 가능하다.

2등급은 기초자료와 몇 개의 인체실험자료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에 부여된다. 라벨에 ‘○○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써야 한다. 예컨대 정어리 펩타이드(2등급)는 “혈압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초록입홍합추출오일은 ‘관절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3등급은 기초자료는 있으나 인체실험을 통해 효능이 확인됐다고 평가할 수 없는 건강기능식품이다. 3등급 제품은 ‘○○의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라고 표시하게 돼 있다.

그러나 편법으로 ‘○○ 개선에 도움’ 등 축약형으로 표시하는 2등급·3등급 건강기능식품이 수두룩하다. 식약청이 기껏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등급제를 만들어 놓고는 이의 준수 여부엔 ‘나 몰라라’한 탓이다.

건강기능식품의 등급화는 소비자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다. 또 건강기능식품 업체의 질 경쟁을 유도하는 데도 기여한다. 표시를 통해 시장에서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효능·안전성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 좋은 등급을 받고자 하는 업소가 과연 얼마나 될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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