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풍경] 관철동 '된장예술과 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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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어릴 적 이맘 때면 이집 저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가마솥 안에서 푹 삶아져 황금빛을 내는 메주콩 냄새다. 나지막한 담을 넘어 절구질 소리가 들리고나면 그 집 처마 밑에는 볏짚에 묶인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된장예술과 술'이란 음식점에서 된장 비빔밥을 먹다가 떠오른 메주 쑤던 날의 풍경이다.

식사 메뉴라곤 된장 비빔밥(4천5백원)과 간장 게장밥(8천원) 두가지뿐인 이 집에 점심.저녁시간이면 손님들이 문 밖으로 줄을 잇는다. 된장 비빔밥엔 우선 비벼먹기 좋게 밥을 넓게 펴 담은 큰 대접이 오른다.

밥은 흑미를 섞어 지은 것으로 약간 된 듯하다. 이어 잘게 썬 부추.치커리가 담긴 야채 바구니와 되다 싶을 정도로 자박자박 끓고 있는 된장찌개가 곁들여진다. 이것만 있으면 된장 비빔밥의 기본 요건은 준비 끝. 그런데 간장빛이 알맞게 든 깻잎 장아찌를 보는 순간 한장을 얼른 밥 위에 얹어 맛보기를 한다.

짭짤.달콤하며 곰삭은 맛이 넉넉하다. 된장찌개도 두부와 함께 호호 불어 입에 넣는다. 오래 전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맛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밥 비비기. 밥 위에 야채를 넣고 밑반찬으로 나온 고구마 줄기.미나리.무 등 삼색 나물을 얹자 멀리 있던 종업원이 큰 소리를 낸다.

"아저씨, 우리집 비빔밥은 야채만 넣어 비벼야지, 나물까지 넣으면 짜요"

이어 그는 "나물과 섞으면 다른 집 비빔밥과 똑같아 된장 예술의 진맛을 볼 수 없다"며 잔소리를 한다.

간장 게장밥엔 중간 크기의 꽃게로 담근 간장 게장이 1인분에 반마리씩 추가된다. 식사 외에 녹두전.부추전.김치전.북어찜구이 등 맛있고 값이 싼(6천~1만2천원) 안주거리가 많아 퇴근 길 막걸리(주전자 한되에 5천원)한잔집으로도 적당하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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