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주차한 후 문 열다 사고·도주도 뺑소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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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해 3월 새벽기도를 가던 전도사 심모(55)씨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한 교회 앞 도로에 자신의 차를 세웠다.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자전거가 차문에 부딪혔고, 자전거를 몰던 김모(68)씨는 길에 쓰러졌다. 심씨는 현장에서 김씨를 돕지 않고 그냥 달아났다. 김씨는 이 사고로 머리가 찢어졌고 뇌진탕 증세까지 나타났다. 김씨는 심씨의 차량 번호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심씨는 뺑소니(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 혐의로 기소됐다.

심씨는 법정에서 “김씨와 부딪힌 사실은 있지만 주차 후에 일어난 일이므로 교통사고가 아니다”며 “뺑소니 혐의로 기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시동을 걸어 운전할 때뿐 아니라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다음 차 문을 잠그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가 모두 포함된다”며 뺑소니 혐의를 인정해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특가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입법목적 및 다양한 교통사고에서 개인의 신체와 재산의 보호 필요성에 비춰볼 때도 뺑소니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 역시 심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4일 “주차 후 운전석 문을 열다 일어난 사고도 교통사고로 인정해야 한다”며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하면 뺑소니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벌금형을 확정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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