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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르치는 대학’ 선정 잡음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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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연세대 김한중 총장은 12일 오전 내내 바빴다. 오전 9시부터 꼬박 세 시간 동안 ‘연세대 학부교육의 강점’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 관계자 11명 앞에서 김 총장과 양일선 교학부총장이 설명을 마치자 심사팀의 질문이 쏟아졌다. 자리에 동석한 학생 20명에게는 ‘송도캠퍼스 이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돌발질문도 이어졌다. 일부 심사위원은 “연구 중심 대학인데 학부 중심 위주의 심사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교과부가 올해 처음 도입하는 ‘잘 가르치는 대학’ 선정 현장 실사 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지난달 26일 완료된 1단계 심사를 통과한 23곳 중 연세대·성균관대·서강대·POSTECH(포스텍·옛 포항공대)·가톨릭대 등 연구 중심 대학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0년간 BK(두뇌한국) 21이나 누리사업 등을 통해 연구 중심 대학을 집중 지원하자 교수들이 논문 실적 올리기에만 나서 학부생 교육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교과부는 올 2월 ‘잘 가르치는 대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학부생의 교육에 힘쓰는 곳을 선정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은 연간 30억원씩 4년간 120억원을 지원한다는 조건에 주요 평가 잣대인 강의평가를 공개하는 등 경쟁이 붙었다. 4년제 대학 200곳 중 125곳이 신청해 1단계에서만 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총장들의 로비전은 로스쿨·약학대학 심사 때 이상으로 치열했다.

하지만 선정과정을 놓고 말이 많다. 1단계 심사에서 떨어진 서울 소재의 한 대학은 “연구 중심으로 10년간 정부 지원을 독식해온 대학들이 대거 포함돼 교육 중심 대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반발했다. 동국대 김영훈 교무팀장은 “5년 전부터 교수들의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 중 가장 먼저 강의평가를 공개해 왔다”며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 대학들은 “선택과 집중을 명분으로 교과부가 또 상위권 대학 위주로 선정한다면 나머지 대학들은 설 곳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교과부가 사업계획 수립 초기부터 모델로 삼고 정책입안에 참가시켰던 일부 대학이 1단계 심사를 통과하자 공정성 시비도 일고 있다. 지방 D대학 관계자는 “형식만 공개 선정일 뿐 미리 다 정해 놓은 것 같다”며 “심사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오태석 대학선진화과장은 “연구 중심 대학 졸업생도 80%는 취업하기 때문에 연구 중심이면서 교육을 잘하는 곳도 뽑으려는 것”이라며 “특정 대학을 내정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최종 선정 책임을 맡은 한국연구재단 대학연구지원팀 김능섭 과장은 “1단계 평가에서도 해당 대학들의 정체성이 연구 중심 대학이지 교육 중심은 아니라는 논란이 많았다”며 “정체성이 선명하지 않은 곳은 선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 최종 지원 대상이 10곳 미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잘 가르치는 대학’=대학 학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과부가 200여 개 4년제 대학 중 10곳을 선정해 올해부터 4년간 매년 300억원씩 총 120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 수도권 4곳과 지방 6곳에 선정한다. 2년마다 재평가를 실시해 탈락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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