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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대화무드 깨는 네오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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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이라크에만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랄 미국의 네오콘(신보수파)들이 갑자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북한문제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나왔다. 네오콘의 두뇌집단인 미국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는 네오콘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에 쓴 글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북한의 정권교체만이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 '김정일체제 전복' 촉구도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인 빌 크리스톨은 네오콘의 사단장 격이다. 그의 아버지 어빙 크리스톨은 네오콘의 대부요, 그의 어머니도 네오콘 논객이다. 대부분의 네오콘같이 유대인인 그는 보통은 이스라엘과 중동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인데 갑자기 북한의 정권교체를 촉구하는 글을 미국의 여론 주도층에 돌렸다. 그는 부시 2기 정부에 북한의 정권교체, 더 정확히 말하면 김정일체제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촉구했다. 3년 전 부시의 연설에 '악의 축'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도 유대계 네오콘 데이비드 프럼이라는 사람이다.

빌 크리스톨은 이스라엘이 1981년 6월 전폭기 8대를 보내 바그다드 북부 오시락에 위치한 이라크의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한 이른바 '바빌론 작전'이 미국 대외전략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한 사람이다. 그는 필요하면 선제공격도 주저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크리스톨과 그의 동료가 북한에 유화적인 한국과, 6자회담에만 연연하는 부시 정부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왜 지금 그들이 갑자기 한반도에 주목하는가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북한은 악의 집단이다. 그들은 부시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이끌려 북한에 대한 태도를 완화할 징조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북핵을 이라크와 함께 미국이 해결할 2대 이슈로 부각한 결과 부시로서는 북핵을 투명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부시가 네오콘들의 입맛에 맞는 대북정책을 채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네오콘들은 온건파 콜린 파월이 국무장관 자리에서 밀려나고 콘돌리자 라이스가 그 자리에 앉아도 대세는 한국의 페이스로 간다는 위기의식에서 부시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국무부의 네오콘인 존 볼턴 차관이 부장관으로 승진해 부시 2기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경으로 돌려세우기를 바란다. 부시의 열렬한 지지세력인 기독교 우파도 이 점에서는 네오콘과 이해를 같이한다. 정부 안에서는 딕 체니 부통령과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재야의 네오콘과 내통하고 있다. 딕 체니의 부인 린 체니도 AEI 연구원이다. 그들의 계획대로 볼턴이 국무부 부장관에 기용되면 라이스 장관이 집행할, 부시의 대화를 통한 북핵해결 노선은 견제를 받을 것이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김정일체제의 전복을 기조에 깔고 있는 것이라면 6자회담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북핵협상에 대한 네오콘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방법은 북한이 진지한 자세로 6자회담에 나와 대화를 통한 북핵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2기 정부의 대북 강경선회를 차단하기 위해 부시 정부 사람들의 비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아슬아슬한 LA발언을 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 북한 지체없이 대화 나서야

산티아고에서 부시는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정상들과 연쇄회담을 갖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북한의 핵무장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북한은 지난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새로운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건설적인 대안을 내야 한다. 미국 안은 한국의 주문대로 거기에 신축성과 창의성을 가미하면 북한이 요구하는 포괄적인 해결방법과 절충이 가능해 보인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받는 외부의 지원으로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지체없이 협상 테이블로 나가야 한다. 시간을 끌면 한국의 미국 견제력은 힘을 잃고 네오콘들의 기세만 오를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