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양준혁 "36억원",이승엽"최고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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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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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서히 매서워지는 11월 중순 프로야구계에도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 경기보다도 더 치밀하고 복잡한 연봉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 중심에는 자유계약선수(FA)로 사상 최고의 몸값을 노리는 양준혁(LG)과 해외진출 포기의 대가를 원하는 이승엽(삼성)이 포진해 있다.

◇ 양준혁 36억원을 달라

지난 18일 양준혁을 만난 LG의 최종준 단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FA가 된 양선수와 우선협상권을 가진 소속 구단의 첫 만남에서 뜸을 들이던 양선수가 기세좋게 선제 공격에 나섰다.

"4년 계약에 36억원을 주십시오."

양선수의 몸값 계산은 이렇다. "올시즌 수위타자(타율 0.355)며 9년 연속 3할대를 쳤다는 점은 어떤 타자보다 비교 우위다. 따라서 지난해 김기태(삼성)와 홍현우(LG)가 받은 재계약금 10억원보다 두배인 20억원은 받아야 한다. 또한 FA가 되면 연봉은 통상적으로 1.5배 오르므로 올시즌 2억7천만원보다 1억3천만원 오른 4억원을 4년 동안 매년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일견 보면 타당한 논리다.

그러나 최단장은 "현재 FA시장 상황을 전혀 무시한 계산이다. 몸값은 경쟁이 치열해지면 오른다. 하지만 올시즌은 아무도 나서는 구단이 없다. 지금으로선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또 "아무리 쇼윈도에 보기좋은 옷이 걸려 있더라도 1천만원짜리 딱지가 붙어있으면 흥정할 엄두가 나겠느냐"고 뼈있는 말도 덧붙였다.

구단과 양선수는 21일 두번째 만남을 갖는다.

◇ 이승엽 최고대우 보장하라

19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라이온즈 사무실. 신필렬 사장과 면담하려는 '라이언 킹' 이승엽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미 해외진출은 하지 않기로 마음의 결정을 했으니깐요."

그리고 4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사장실을 나온 이선수는 "구단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자칫 해외진출 여부가 돈문제로 보일까봐 조심스럽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모든 건 구단에 일임했다"고 말했다.

자존심을 지켜준다. 쉬운 말이 아니다. 차라리 '얼마를 달라'고 액수를 말하면 계산기를 두드릴텐데 '백지 위임'하는 식으로 구단에 넘기면 구단은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백지 위임'한 이선수의 요구는 한마디로 '최고 대우'다. "해외 진출도 포기했다. 다년 계약도 곤란하다는 구단의 입장에 따랐다. 그럼 무엇이 남은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구단도 우호적이다. 나름대로 섭섭지 않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신사장은 "반드시 최고대우가 좋은 것은 아니다. 선수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본인이 굳이 원한다면 들어주기야 하겠지만…"이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아직 불씨가 남았다. 확실한 것은 다른 선수의 연봉 협상이 끝난 뒤에야 이선수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것이라는 점뿐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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