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광장] 파병 담보로 한 슈뢰더의 도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배수진을 쳤다.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파견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연립정권 파트너인 녹색당 의원 일부는 물론 사민당 의원까지 반대하자 연정 붕괴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슈뢰더 총리는 지난 13일 집권 사민당 의원총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한 하원의 투표를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와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파병안이 부결될 경우 이를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 의회를 해산하고 새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뜻이다.

슈뢰더 총리가 이런 초강수를 둔 것은 파병안에 반대하는 연정 내 좌파세력, 특히 녹색당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집권 연정의 의석수는 절반을 7석 넘는 3백41석. 파병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당시 연정 내 반대표는 15석을 넘었다. 그러나 지도부의 설득으로 녹색당의 반대는 8표까지 줄었다. 그래도 연정만으론 과반수 미달이었다.

슈뢰더 총리는 야당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파병안 승인을 관철하길 원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노리는 마당에 반테러 국제연대에 대한 집권당 내부의 반대는 국가적 체면에 관한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폭탄선언' 하루 전에 슈뢰더는 보란 듯 귀도 베스터벨레 자민당 당수와 회동했다. 파병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지만, 녹색당이 끝내 파병에 반대한다면 연정 파트너를 자민당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경고 성격이 강했다.

슈뢰더의 승부수는 일단 효력을 발휘했다. 이날 사민당과 녹색당 의원총회에서 그간 파병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던 의원들이 "총리 신임문제라면 찬성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15일 현재 녹색당 의원 4명이 아직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고, 사민당에서도 2명의 반란표가 예상되고 있어 자력으로 파병안을 통과시키기가 아슬아슬하다. 이에 따라 16일 실시되는 하원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찬반투표에서 야당이 반대해 과반수인 3백34명의 찬성이 나오지 않을 경우 현 사민.녹색당 연정은 깨지게 된다.

녹색당에 대한 엄포로 시작했다가 정말 '실제상황'이 돼버린 슈뢰더의 이같은 도박이 성공을 거둘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