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 변천사] '천막 꽁보리밥'은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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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1962년 입소 당시 훈련소는 비바람을 피하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호텔급 내무반에 영내도 대학캠퍼스처럼 꾸며놔 그저 놀랄 뿐입니다."

지난 8일 39년 만에 논산훈련소를 찾은 경달선(慶達善.59)씨는 "꽁보리밥에 배추국과 단무지 반찬 하나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훈련했던 시절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병훈련소의 대명사인 논산 육군훈련소.

6.25전쟁 와중인 51년 11월 1일 전선(戰線)에 곧바로 투입될 병사들의 기초 군사교육을 위해 창설된 뒤 지금까지 6백만명의 정병을 길러냈다.

병사들의 자긍심과 평생 잊지 못할 애환의 원천인 논산훈련소는 우리 군의 발전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50년대에 입소한 훈련병들은 천막에서,60년대는 흙벽돌 건물, 70년대는 슬라브 건물, 80년대는 2층 막사에서 훈련에 지친 고된 몸을 누였다.

90년대 들어서는 온수가 공급되고 개인 캐비닛이 갖춰진 현대식 건물로 한껏 치장을 했다. 75년에 입소했다는 박현상(朴賢祥.47)씨는 "내무반에 빨래도 말리고 라면도 끓여 먹던 페치카가 없어 언뜻 '이곳이 훈련소인가"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고 말했다.

변화는 내무반 등 환경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어서 식판을 돌로 쳐서 늘린 훈련병들, 배고파 훈련소 철조망 울타리를 낮은 포복으로 기어나가 고구마를 훔치다 적발된 훈련병들의 얘기는 이제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특히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교육방식이다.

97년부터는 컴퓨터를 이용한 동영상 및 시뮬레이션 기법을 도입, 총검술 등 신병훈련 전과목을 가르친 뒤 야외에서 실기훈련을 하고 있다.

교육장에서 늘상 보이던 구타.폭언도 사라진지 오래다. "훈련병과 명태는 팰수록 부드러워진다"는 얘기와 함께 퍼부어지던 군화발질과 주먹질이 이젠 설득과 상벌제도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이 훈련소 28연대 소대장인 정남이(鄭南二.24)중사는 "디지털 시대의 신병들에게 맞게끔 컴퓨터를 통한 교육기법을 지속적으로 개발중"이라며 "교관이나 조교도 구타는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훈련병들은 점수관리에 여념없는 것이 새로운 모습이다.

또한 95년부터 훈련병에게 금연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신병훈련 수료식 때 허용하던 면회를 폐지해 퇴소일마다 북적거리던 훈련소 앞의 풍경도 사라졌다.

논산=성호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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