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중 초대전 '풍경'… 묘사 대상 과감히 클로즈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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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보잘 것 없는 나무줄기, 풀썩이는 낙엽과 마른 흙바닥에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생명의 경이, 그것은 내 예술의 동기이며 마음의 집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개발과 선진화라는 자본의 탐욕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따스한 감성, 자연의 순리에 귀 기울이길 권한다."(작가 노트 중에서)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보중(48.사진)씨 초대전'풍경'은 숲속의 풍경을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로 보여준다(30일까지).

성곡미술관의'21세기 미술가' 기획시리즈에 따른 이번 초대전에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회화.설치.드로잉 50여점이 별관 3개층을 메우고 있다.

1층에는 숲을 주제로 한 최근작들이 있다. 나무와 덤불, 숲속의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들을 담은 평면과 숲 그림으로 만든 집(입체 설치물)들이다. 그의 숲은 낯설고도 생생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통상적인 풍경화가 멀리서 대상 전체를 관조하는 시선인 데 비해 그의 숲 풍경은 숲속에서 맞닥뜨리고 부닥치는 장면을 확대, 절단해 보여준다. 가지와 덤불, 바닥에 쌓인 낙엽이나 오솔길이 영화 카메라의 클로즈업 처럼 그려져있다.

관객은 자신의 몸에 가시덤불이나 나뭇가지가 부딪치고 풀이나 낙엽이 밟힐 듯이 가까이서 숲과 맞닥뜨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어릴 적 넘어졌을 때 무르팍에 생기는 선연한 생채기 같은 이미지이다. 일종의 충격으로 새롭게 드러나는 숲 속에는 벌거벗은 남자나 여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숲의 순례자'연작이다.

관객은 새롭고도 또렷하게, 그리고 맨몸으로 숲과 만나는 강렬한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2층에선 목탄과 콘테 등으로 그린 숲그림들이 전시 중이다.

흑백 톤의 숲에 사람이나 방.심장.비행기 등의 형상을 흰색 드로잉으로 겹쳐 그린 작품들이다.

'비상'의 경우 풀밭에 난데없는 비행기의 골격 투시도가 방금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겹쳐 그려져있다.

'숲-그림자' 연작의 벌거벗고 서있는 남자, 해부학 모형도 같은 심장(생명 이미지), 방과 집의 형상도 마찬가지다. 숲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언뜻 보였다 사라지는 잔상효과처럼 드러낸 작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와선(臥禪)을 하는 티베트불교의 이미지를 담은 '산위에서 명상'이나 광주 희생자를 그린 '학살 이후'같은 90년대 초기작품도 눈에 띈다.

3층에는 80년대 초반의 민중미술적 작품이 전시돼있다.

흙을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사람형상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절규하는 생생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실향민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을 도회지의 변두리에서 지낸 작가는"내게는 고향이 없다. 그 상실감에 따른 보상심리가 숲속의 집과 방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난 듯하다. 숲은 온몸으로 직접 자연의 힘을 느끼며 원초적 감각이 열리는 해방구"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그림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풍경속의 섬처럼 남아있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그림과 그림끼리, 그림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교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업한다"고 말한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캘리포니아 주립대(시카고)와 캘리포니아대(어바인)대학원을 졸업한 작가의 11번째 개인전이다. 02-737-765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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