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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작된 문서' 파장] '野 흔든 북풍' 여·검찰에 역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승인없이 북측 조평통 안병수(安炳洙)부위원장과 접촉한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이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과 민주당이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게됐다.

재미동포 金양일씨는 지난 9월 21일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해 "鄭의원 요청으로 97년 11월 20일 두사람 회동을 주선했으며, 회동이 끝난뒤 安부위원장으로부터 두사람의 대화내용이 적힌 회의록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서명이 있는 鄭의원에 대한 위임장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또 "회의록에는 李총재가 대선에 승리할 경우 98년 2월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1억달러 상당의 비료제공 등 약속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증언했다.검찰은 金씨로부터 회의록과 위임장을 제출받아 법원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의록에 대해 ▶鄭의원과 북측이 한부씩만 보관하는 문서 원본을 연락책에 불과한 金씨가 북측에서 받았다고 믿기 어렵고▶회의록의 鄭의원 서명이 金씨에게 보냈던 편지의 서명과 일치하며▶양측 서명부분에 가필 흔적이 뚜렷한 점을 지적, "명백히 조작된 문서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金씨의 증언이 있은 뒤 대변인 성명과 국회 본회의 질의 등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대북지원을 미끼로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한 한나라당의 비열한 작태"라며 공세를 폈다. 이에 따라 당시 정치권에서는 "G&G회장 이용호(李容湖)씨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민주당이 재.보궐선거(10월 25일)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아킬레스건인 북풍(北風)사건을 재론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왔었다.

재판장인 金부장판사도 판결 선고 뒤 "金씨의 증언내용은 시점으로 미뤄 정치적인 분위기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지검 공안1부 관계자는 "회의록을 보면 安부위원장을 우연히 만났다는 鄭의원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재판부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료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참고용으로 제출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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