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널뛰는 '물 수능 불 수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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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돼 평균점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충격에 빠져 있다.

시험을 보다 중도에 포기한 수험생이 적지 않았고, 일부 과목의 경우 학원강사들조차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니 난이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처럼 어려운 수능시험으로 인해 일선 교사들은 진학지도에 고심하고 있으며, 고교 2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과외가 더욱 기승을 부리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이 이처럼 어렵게 출제된 것은 지난해 만점자가 66명이나 쏟아져 나오는 등 변별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출제위원회측은 "난이도와 변별력은 이율배반적인 관계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애썼다"면서 이번 수능시험의 적정난이도를 1백점 만점으로 환산해 77.5±2.5점에 맞춰 지난해보다 16~37점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고교의 가채점 결과는 최소 40~50점에서 최고 60~70점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도 교육과정평가원측은 4~5점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26.8점이나 점수가 올랐다.

대입 본고사가 폐지되고 내신성적마저 불신받고 있는 현 상황에선 그나마 수능시험이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중요 잣대란 점을 감안할 때 난이도 유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해마다 난이도 조정에 실패해 '물수능'과 '불수능' 사이를 오간다면 수험생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대비할 것인가.

더구나 올해 고3 학생들은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간다'는 말을 믿고 느슨하게 공부해온 이른바 '이해찬 1세대'다. 보충수업이 금지됐고 모의고사 응시횟수마저 제한받았다. 이러한 학력 저하 현상을 감안하지 않고 난이도만 높였으니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함정식' 문제를 많이 낸 것도 잘못된 출제방식이다. 입시학원 등에 따르면 '아닌 것을 고르시오'식의 부정형 문제가 지난해 20문항에서 올해는 35문항으로 늘었다고 한다. 난이도를 의도적으로 높이기 위해 수험생의 실수를 유발하는 함정파기여서 비교육적인 출제유형이다.

이처럼 난이도가 널뛰기를 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출제기간이 20일여로 짧아 다양한 문제를 개발하고 난이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또 출제에 참여하는 고교 교사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당국은 고교 교사수를 늘리겠다고 해왔지만 올해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교사는 제2외국어 6명과 사회탐구 및 과학탐구 각 2명 등 10명에 불과했다.

수능 혼선을 막으려면 교육당국은 문제를 연중 출제토록 해 타당성 검토를 거쳐 문제를 적립하는 문제은행식 출제방식을 도입하고, 전과목에 걸쳐 고교 교사들을 출제위원으로 참여토록 해야 한다.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적성검사(SAT)와 같은 표준점수제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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