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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형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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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십니까?" 일본 영화 '교사형(絞死刑)'은 해설자가 묻는 이 한마디로 시작한다. '감각의 제국'으로 이름난 오시마 나기사가 1968년에 만든 영화는 일본 여고생 강간살인죄로 교수형당한 재일 한국인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교토대학 법학부 시절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오시마는 정치색 짙은 작품 성향을 띤 감독으로 유명한데 '교사형'에서는 차별당하는 재일동포 문제와 함께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을 풍자하고 있다.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십니까?'란 역설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꽤 된다. 사형 집행장에 들어서는 사형수를 부르는 교도관들의 변말을 제목으로 내건 미국 감독 팀 로빈스의 95년작'데드 맨 워킹'또한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사형제도에 관한 영화다. 사형수에게 독극물을 주입하는 마지막 장면은 흉악범일지라도 국가가 과연 법의 힘을 빌려 그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옳은가 되묻게 만들 만큼 처연하다.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차분하게 고발한 이 작품은 84년에 출간된 헬렌 프리진 수녀의 책을 바탕으로 했다. 사형제 폐지 운동가로 세계에 알려진 헬렌 수녀는 사형제도가 또 다른 형태의 살인제도라고 비판한다. 사형수의 90% 이상이 빈곤층이고 흑인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가 누구에게나 해주는 말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진실로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목숨을 끊는 독약을 사형수에게 직접 주사할 생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십니까?'란 물음이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 떠올랐다. 그 자신이 사형수였던 유인태 의원이 동료 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아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낸 것이다. 이 나라에는 유 의원이나 김지하 시인처럼 지난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살아난 많은 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분단시대를 내세운 독재정권에 의해 사상범으로 몰린 이들이다. 정적을 없애는 정치적 살인의 아가리에서 살아 돌아온 셈이다. 75년 4월 9일 새벽,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한 지 19시간 만에 죽임을 당한 인혁당(인민혁명당) 관련자 8명처럼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도 많다. 정부 수립 이후 사형 집행이 가장 잦았던 시기가 박정희 정권 때였다는 통계는 한국 사형제도의 특수성을 증거한다.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십니까?'한국 현대사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