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희의 노래누리] 음악담당 기자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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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며칠 전 한 젊은 대중음악비평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중앙일보가 최근 연재를 시작한 '한국의 작곡가'들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요컨대 어느 작곡가의 경우 표절 혐의가 짙다는 비판이 많지 않았느냐, 너무 따뜻한 시각으로만 쓴 게 아니냐는 불만이었습니다.

일면 타당한 지적입니다. 다만 이 시리즈는 가요계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게 목적인 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은 대중음악을 담당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날 대화는 어쩌면 한국의 대중음악 담당기자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축약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새 앨범만 냈다 하면 수십만장, 많게는 1백만장(!)씩 거뜬히 파는 그룹, 그리고 솔로 가수들이 있습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엄청난 판매량은 대중적 인기를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음악이 뛰어난가. 독창성과 음악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표절,혹은 잘해야 외국곡들의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한 노래들도 있습니다.

주로 립싱크를 하는 이들이 한국 대중음악을 망친다는 비난도 일리있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외면 혹은 비판만 할 것인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인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는 데서 고민은 시작되더군요.

한류(韓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화권에서 인기있는 가수들이 음악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가. 저는 '그렇다!'고 못하겠습니다.

'음악'의 해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션 서태지가 최근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앨범이 얼마나 팔린지 아십니까. 4천장 남짓에 불과합니다. 일본 대도시의 주요 음반매장을 뒤져도 찾기조차 어렵습니다.

음악 선진국으로의 진출이 이렇듯 힘겨울 때, 일부 댄스 음악.가수들이 중화권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러나 한류 열풍이 우리 기업의 중화권 진출과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낮게 평가해서는 안되겠죠. 그렇기에 그들의 음악성이 떨어진다고 비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대중적 인기와 창의적 음악성. 둘 사이에서의 고민은 뮤지션 뿐만 아니라 취재기자에게도 해당됩니다. 음악성 있는 뮤지션들이 인기도 얻었으면 좋겠다는 변함없는 생각으로 새로운 1년을 시작합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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