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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장학근 이순신연구소장 ‘거북선 새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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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귀배판이 왼쪽 그림처럼 둥글지 않고 사다리꼴(가운데 그림)로 각져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학근 연구소장이 CG로 복원해 본 거북선 모습(오른쪽 그림). [순천향대 제공]

“지금껏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의 기본 구조가 잘못 알려져 있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에서 거북선에 대한 새 주장이 나왔다. 장학근(사진) 이순신연구소장은 11일 제12회 이순신학술세미나 발표 예정 논문에서 “현재 알려진 거북선 구조로는 이순신전서에 나오는 전투 장면처럼 맹렬한 전투를 벌일 수 없다”며 “종래 복원된 구조에선 노를 저으면서 포를 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거북선 3층은 둥근 면으로 왜병이 거북선에 오를 수 없도록 송곳이 꽂아 있는데, 사실은 둥글지 않고 사다리꼴(육면체)로 꺾인 구조였다는 것이다. 위 왼쪽 그림처럼 둥근 구조에선 사람이 거동할 수 없지만 사다리꼴 구조(가운데 그림)에선 포(砲) 구멍을 만들 수도 있다.

장 소장은 그 근거의 하나로 임진왜란 전 이덕홍이 그린 귀갑선도(龜甲船圖)에 주목한다. 그 그림엔 3층 귀배판(龜背板)이 사다리꼴로 그려져 있다. 장 소장은 “전라좌수사에 임명된 이순신은 당시 각종 병서와 군서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씨의 귀갑선도를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거북선은 귀배판(3층)·방패(2층)·현판(舷版, 1층)으로 구분된다. 방패는 선체 가운데를 빙 둘러친 부분으로 포 구멍이 배치돼 있다. 현판은 맨 아래 부분으로 배를 움직이는 노가 설치돼 있다.

모든 복원 거북선은 『이충무공 전서』를 참조했는데 귀배판과 현판의 포구는 없어지고 방패에만 포구를 설치돼 있다. 장 소장은 “이것은 기본 자료에 충실하지 않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거북선도 아니고, 정조 때의 거북선도 아닌 실체가 없는 거북선”이라며 “이로 인해 거북선이 2층, 2·5층, 3층설 등 전술 논리에 맞지 않는 무수한 이론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이충무공 전서』는 1795년(정조19년)는 왕명으로 유득공이 감독·편집해 간행됐다.

▶“귀배판은 ‘죽은 구역’이 아니다”=거북선의 최대 추정 높이는 6m다. 귀배판, 방패, 현판을 각각 2m로 나누면, 3개 공간에서 임진왜란 당시 평균키가 153cm 였던 조선 수군이 충분이 전투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껏 알려진 귀배판은 둥근 형태로 배의 가장자리 부분은 사람이 활동할 수 없는 사구역(死區域)이 된다.<위 왼쪽 그림> 그래서 거북선을 복원하는 사람들은 상갑판을 없애고 모든 포 구멍을 방패판(주갑판)에 배치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장 소장은 “이같은 구조라면 포를 쏘면 노를 사용할 수 없고, 노를 사용하면 포를 쏠 수 없는 군선이 된다”고 말했다.

충무공의 사천해전 기록에 의하면 “거북선을 적의 누각선 아래로 곧장 다가가게 해 용의 입에서 현자 철환을 쏘게 하고, 천자·지자 총통으로 대장군전을 발사해 적선을 깨트리자, 뒤따르던 여러 전선들이 달려들어 철환과 화살을 번갈아 쏘았다”고 했다. 이처럼 거북선의 여러 곳에서 총통을 발사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현재 복원된 거북선 구조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장 소장은 “정황상 거북선 귀배판이 포혈포 구멍을 배치할 수 없는 둥근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거북선 관련 자료를 다시 검토하던 중 이덕홍의 『간재집』의 귀갑선도를 착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그림을 입체화(사다리꼴 직육면체)해 거북선 귀배판 위치에 놓아 본 결과<위 오른쪽 그림>, 상갑판의 사구역이 전투 활동구역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해군사관학교(해사)를 졸업한 장 소장은 서울대 국사학과(학사),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석사),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박사)에서 공부한 후 해사 교수, 해사박물관장,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해양사실장 등을 역임했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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