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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반쪽이라도 지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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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이 우리의 제1 무역국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 중국을 설득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통일도 꿈꾸어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확실한 G2 국가로 부상했다. 미국은 정점에서 내려오는 중이고 중국은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동북아에서 패권(覇權)의 중국, 신중화(新中華)의 도래를 사실상 선포한 것이다. 혹자는 중국의 미래를 의심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소수민족 문제, 빈부의 격차, 민주화 요구 등이 성장의 발목을 잡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전망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시장경제+일당독재’ 체제가 21세기의 새로운 국가모델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러시아 부총리이자 푸틴의 참모인 알렉산드르 주코프는 “중국 공산당이 이룩한 성취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면서 “그들이 가진 실천적 경험을 러시아는 심도 깊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산주의 몰락 후 체제방황을 하고 있는 러시아가 중국 모델을 택할 경우 세계는 ‘시장경제+민주주의’ 대 ‘시장경제+일당독재’의 체제싸움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 북한 역시 중국 모델을 따라갈 것이므로 우리와 다시 한번 체제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통일은 어쩌면 100년 이상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우리 5000년 역사에서 지난 수십 년간 중국과의 관계는 잠깐의 기적이었다. 그들이 문화혁명으로 주춤거릴 때 우리는 한 발 앞서 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들이 우리의 기술력·경영능력을 필요로 하는 한 우리를 깔볼 수는 없다. 이미 세계화 경쟁 속에 뛰어든 중국은 한 발 앞선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보다 항상 한 발 앞서 가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인데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한국은 덩치가 작은 나라인데도 늦게 움직인다”고 했다. 이는 지도력을 빗대어서 한 말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글로벌 경제체제하에서 훈련된 우리 기업인들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세변화에 대비해 중국 위주의 수출과 투자를 인도 등으로 더 다변화해야 하며, 새롭게 부상하는 G20을 잘 활용해야 한다. 13억이라는 인구 비대칭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1당 30을 할 수 있는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의 견제, 질시 때문에 평균주의를 채택한다면 밖을 향해 더 큰 굴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엘리트 교육을 심화시켜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치 리더십의 경쟁력이 더 절실해진다. 중국은 공산당 내부의 경쟁으로 리더십을 충원하는 데 반해 우리는 보통선거로 리더십을 뽑는다. 그 결과 우리의 리더십은 점점 포퓰리즘화돼 가는 반면 중국은 능력주의화되고 있다. 중국이 부패했다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타락이 더 큰 문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단결력에 있다. 풍선에 구멍을 뚫는 것은 작지만 단단한 바늘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모든 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어야만 단결력이 생긴다. 나라에 위기가 발생하면 불평·분열집단들은 외국 세력을 등에 업으려 한다. 다시 구한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 불평등이 없어져야 하고 지도자들부터 희생에 앞장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등한 군사력이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그 균형을 이룰 수 없다. 혹자는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으로 나라를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강대국 옆의 작은 나라가 중립을 취하는 것은 곧 그 나라에 종속됨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 대한 한국의 위치를 구소련에 대한 핀란드와 비교하기도 한다. 소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알아서 처신하는 종속의 문화, 곧 핀란드화가 한국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주한 미군이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이 떠난다면 한반도의 세력균형은 바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한반도가 일본에 병탄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지금 한반도에는 다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가 준비되지 못하면 어디로 떠내려갈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시급한 일은 우리가 한반도의 반쪽이나마 지켜내겠다는 국민적 각오이며, 그 목표 아래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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