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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어느 촌부의 문화재 사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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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병호(50.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천리)씨는 부자가 아니다. 밭 1천평에 고추와 배추를 심어 노모(68)와 병든 아내 등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간다.

그는 배움도 깊지 못하다. 남들 다 가는 중학교 문턱도 넘지 못하고 영월 서면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게다가 몸도 불편하다. 한 쪽 다리의 신경이 죽어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런 그에게 올해 사정은 더욱 나쁘다. 지난 5월 1일 배추농사를 짓던 밭의 일부에 절을 지으려고 터를 닦다가 화강암으로 만든 길이 30~40㎝, 폭 10~15㎝ 크기의 나한상(裸漢像)60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엿새 후 그는 관계당국에 발굴 신고를 했고 4개월여에 걸친 지루한 감정을 거쳐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마침내 지난달 20일 5백 나한상의 일부로 보이는 2백30여개가 무더기로 발굴되고 이를 봉안한 나한전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까지 함께 확인됐다. 이런 일들로 그는 1년이면 서너번 하던 배추갈이를 올해는 단 한 번밖에 하지 못했다.

배움이 깊지 않은 그로서는 밭 한평 사는 돈도 수월치 않았을 터. 객지에서 막노동도 하고 회사도 다니다가 다시 서면에 둥지를 튼 것은 20년 전. 소작도 하는 그는 지금도 밭일을 나가지 않으면 짚신을 삼을 정도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까닭에 "밥은 먹고 살 만한" 땅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 나한상 유적지가 된 땅은 3백32평. 그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땅이다. 강원도 영월군 창원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는 이 땅은 요즘 시가로 7백만원 정도. 길을 닦느라고 든 비용은 이것의 열곱도 넘는단다.

그렇지만 그는 이 땅을 국가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곧 시작될 나한전 주변의 2차 확대발굴작업이 끝나면 기증 동의서를 낸다.땅은 물론 허공에 떠 버린 배추농사에 대해서도 국가의 보상은 일절 없는 채로.

지금까지 문화재를 기증한 사람은 2백8명. 1만3백67점의 문화재가 국가 소유로 넘겨졌지만 땅 임자가 그 땅을 국가에 기증한 예는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개인의 땅이라 하더라도 유적지로 지정되면 사고 팔 수야 있지만 일절 개발이 금지되는 까닭에 사실상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게다가 매장문화재 발굴에도 첫번엔 면허세를 물어야 한다.

그러니 서민이 대부분인 땅임자들은 어쩌다 우연히 유물이 발굴됐다 하더라도 서둘러 땅에 되묻어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유적지로 지정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할 수 없이 유적지로 정해지면 한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국가가 땅을 매입해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金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한전을 복원하고 제대로 나한상을 보존해달라는 것이 유일한 '기증 조건'이다. 따로 재산도 없는 농부가 삶의 터전인 땅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담백했다.

"인연따라 나왔는데 잘 보존돼야지유. 내가 죽은 다음에도 어느 나라 사람이건 와서 나한상이 나온 자리를 둘러보고 나한상을 볼 수 있으면 좋은 거유."

강원문화재연구소 지현병 연구실장에 따르면 과거 나주 불회사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나한상은 목이 잘린 채여서 폐기된 것임을 시사하지만 이 나한상들은 나한전에 불이 나 그대로 내려앉으며 땅 속으로 묻힌 온전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에 조각된 것으로 정교하고 조각수법과 모습도 다양해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나한상들이 오랜 세월 땅 속에서 지내 일부는 가루가 될 정도로 약해져 있어 보존처리가 시급하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金씨의 속내가 짐작이 갔다. 그는 나한상을 더할 수 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지닌 넉넉함.'문화의 문외한'인 촌부가 보여준 문화재 사랑이 가슴을 파고 드는 이 가을,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사랑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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