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이 출병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 참의원이 전후 50년 동안 유지해온 전수방위와 집단적 자위권 불행사라는 안보원칙의 대변경을 의미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안을 29일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통과로 일본은 군대 보유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 제9조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이미 첨단무기 보유와 예산에서 세계 2위의 군사강국인 일본 자위대가 일본 밖으로 뛰어나오는 상황은 한국.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우려를 주기에 충분하며 동아시아 전체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들이 일본에 평화헌법을 강요한 이유는 일본이 전쟁도발국으로서 주변국가와 인류사회에 커다란 죄과를 저질렀기 때문이며 앞으로 일본이 이러한 죄과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경제대국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큰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일본은 과거 죄과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우선적으로 보여야 했다.

과거사에 대한 청산 없이 자신들의 피해만을 강조하고 주변국가와의 갈등을 야기하는 일본이 미국 테러사태 이후의 분위기에 편승해 재무장을 꾀하는 것은 너무 속보이는 처사일 뿐 아니라 주변국의 우려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비슷한 법안 심의과정에서 보였던 일본 내 시민단체와 비판적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발이 이번엔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일본 내 보수.우경화 분위기의 확산과 함께 우리의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화가 한반도 안보상황은 물론 동아시아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기도가 아시아의 안정과 화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