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예진흥원 미술관 초대전 성능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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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나는 미술과 생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의 아우라(후광)를 벗겨내고자 한다."

성능경(57)씨는 1970년대 이래 예술권위주의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대표적인 비주류 작가다.

"물질적인 작품을 남기는 데는 관심이 없다. 정보와 관념을 전달해서 인식과 소통의 폭을 넓히자는 게 내 의도다." 그는 앵포르멜(격정적인 비정형 추상)모노크롬(예술에서 재현의 요소를 제거한 단색화)이 지배하던 70년대 초부터 화단의 이단아였다.

해프닝과 행위미술을 시작한 그는 특히 개념미술에 해당하는 작업을, 국내 작가로선 거의 유일하게 30년간 지속해왔다. 사회와의 소통, 일상의 회복, 예술의 탈물질화를 지향하는 그는 같은 70년대의 비주류 작가인 이건용이나 김구림보다 더욱 외곽, 변방의 변방에 위치한 '영원한 경계의 작가'로 평가된다.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이지만 유화작업은 68년 이후 손을 끊었다. "캔버스(평면회화)는 이미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을 만큼 갈 데까지 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매체에 담아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그는 이후 행위미술과 사진작업을 계속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장식성이나 아름다움과도 거리가 멀었고 모노크롬 추종자들이 지배하던 화단의 권력구조에서도 철저히 소외돼 왔다.

"평생 동안 작품 한점 팔아본 적이 없다"는 성능경의 개인전이 9~25일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다. 미술회관의 연례 '한국 현대미술 기획초대전'에 선정돼 1,2관 전체를 쓰는 이번 행사는 70년대의 초기작품 부터 최근작을 망라하고 있다.

전시회는 "삶은 질서도 무질서도 아니다. 다만 착란일 뿐이다"라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전시제목으로도 쓰인 신작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 연극.퍼포먼스.자화상을 한데 결합한 듯한 1.2m크기의 원색사진 18장이다.

무대는 자신의 18평짜리 단독주택. 계원예고 미술강사로 21년째 재직 중인 작가가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4자녀와 함께 사는 '히스테릭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작가는 실내에서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은 채로 플래시를 연이어 터뜨리며 탈출할 수 없는 일상속에 농축된 불안한 히스테리와 예술적 광기를 노출시킨다. "현실의 습관화된 껍질을 벗겨내는 것은 그의 예술의 오래된 목표"(평론가 성완경)라는 평론 그대로다.

70년대 작품으로는 신문기사를 면도날로 오려내 유신시대의 언론탄압을 간접 비판한 '신문:1974.6.1'이나 가족사진을 모은 설치 'S씨의 반평생''S씨의 자손들'도 있다.

신문사진을 접사촬영해 편집자의 권력을 해체한'현장', 신문지나 광고전단에 구두약을 칠한 '넌센스미술'등의 80년대 작품과,'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망친 영화가…''망친 예술이…''망친 삶이…'등의 90년대 작품들도 출품된다.

사진작가 이강우씨가 작가의 퍼포먼스를 찍은 '신체풍경'과 박용석씨가 작가를 촬영한 비디오 다큐멘타리 'S씨의 하루'등 첫 공동작업도 나온다.

"나는 현장에 서있기를 원하면서 현재의 역사를 증언하고자 한다"는 그의 작품은 알쏭달쏭한 은유나 모호한 제스처가 없이 의미전달이 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9일.17일.24일 오후 4시에는 작가의 퍼포먼스가, 24일 오후 1시 문예진흥원 강당에선 그의 예술을 조망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02-760-4601.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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