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승마] 말타는 맛, 말이 필요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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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로 우울증을 극복한 코미디언 배연정씨. 승마를 시작한 지 10개월만에 전문가가 다 됐다. 그는 “말을 타면 구부정한 허리가 펴지고 장 운동이 활발해지며 허벅지 안쪽 근육이 발달해 꿀벅지가 된다”고 말했다. [사진촬영=Photo di 최병관]

췌장에 3개의 종양이 발견돼 2004년 절제수술을 받고 몸이 많이 약해진 코미디언 배연정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음식점 사업에 실패하면서 큰 빚을 졌다. 좌절감에 휩싸인 배씨는 이후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그녀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승마의 힘이 컸다. 지난해 7월 남편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한 배씨는 날씨만 맑았다 하면 승마장을 찾을 만큼 매력에 빠져들었다. 배씨는 “승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는 힘든 운동인데 말과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사랑하게 되고, 우울증을 극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앉아만 있어도 걷는 것과 같은 운동 효과

말을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은 승마로 말만 운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30분만 타보세요. 땀이 흠뻑 납니다.” 20년간 승마를 해온 광주 서방비뇨기과 정영곤 원장은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움직여 처음 탄 며칠은 몸이 욱신욱신 아프다”고 말했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균형을 잡는 동안 전신운동이 된다는 것.

말에 앉아 있는 사람(기승자)의 몸은 말의 움직임에 따라 10분에 500~1000회씩 흔들린다. 마치 사람의 걸음걸이와 유사해 직접 걷는 것과 같은 운동 효과를 낸다. 전국승마연합회 양정훈 경기·심판위원은 “승마 시 장기에 전해지는 진동은 100m 달리기를 할 때와 비슷하다”며 “100m를 전력 질주할 때는 20초 안팎이지만 승마는 약 45분간 진동이 계속돼 위장과 심장·폐 기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오산한국병원 조한호 병원장은 주 2회씩 8개월간 승마를 경험하기 전후의 복부 초음파를 찍어 비교해 봤다. 조 원장은 “20년간 지방간이 중등도(3~4등급)로 심했는데 승마 후 거의 없어져 깜짝 놀랐다” 고 말했다. 승마 45분에 약 350㎉가 소모돼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

척추 바로 세우고 근육 강화 … 자세 교정 효과도

말이 일직선으로 걸어가게 하려면 기승자는 좌우 엉덩이에 동일한 체중을 실어야 한다. 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려면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말에 탄 모습을 옆에서 보면 어깨와 엉덩이 뒤쪽, 발뒤꿈치가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스포츠손상치료전문인 분당 바른세상병원 서동원 원장은 “체중이 지나는 선이 일치할 때 우리 몸은 가장 편안한 상태가 돼 최소 근력으로 최대 균형력을 발휘한다”며 “이를 반복해 승마 경력이 쌓일수록 일상생활에서의 자세도 좋아진다”고 했다.

승마는 인체의 기둥 역할을 하는 척추를 바로 세우고 지탱하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킨다. 서 원장은 “승마는 골반 위의 척추만으로 균형을 잡는데, 이때 척추뼈에 붙은 작은 근육(척추심 부근)들이 섬세하게 움직이며 상체를 바르게 교정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업시간에 자세가 나쁜 어린이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도 승마가 좋다. 양정훈 위원은 “허리를 지탱하는 근육이 퇴화해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는 노인에게 더 필요한 운동”이라며 “신체의 리듬감을 기르고 허리가 유연해진다”고 덧붙였다.

직접 말을 타지 않아도 양다리를 벌리고 무릎과 고관절을 약간 구부려 버티는 기마 자세도 척추를 건강하게 한다. 척추가 바르게 정렬되면 척추 내부를 지나는 신경과 혈관의 순환이 좋아지고 좌우 균형이 잡힌다.

살아있는 동물과 교감, 정신 건강에 도움

말의 평균 수명은 25세 정도. 혈기가 가장 왕성한 6~7세 이전까지는 대부분 경주마로 힘을 뽐내다 이후 승마용이 된다. 주로 마른 풀을 먹는데 당근이나 옥수수·수박·참외도 잘 먹는다.

승마는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하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하는 운동이다. 기승자는 엉덩이와 허벅지·종아리의 힘으로 말의 몸통을 조이며 신호를 보낸다. 고삐를 살짝 놓으며 혀를 ‘끌끌’ 차면 ‘가자’, 고삐를 당기며 ‘워워’하면 ‘멈추라’는 뜻이다.

11년째 거의 매일 말을 타고 있는 태릉성심병원 정형외과 장호연 원장은 “승마를 하면 사람과 말이 호흡을 같이하는 인마일체(人馬一體)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며 “사람이 말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 신호를 보내면 말이 기승자에 신뢰하고 받아들여 반응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고 했다. 정신건강에 좋은 이유다.

가격 부담된다면 무료강습도 받아볼 만

사람이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부터. 승마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귀족 스포츠란 이미지가 강해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승마는 마장과 말을 관리하고 강습하는 비용을 포함해 보통 45분 타는 데 적게는 3만~8만 원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 승마장은 약 230개이며, 승마 인구는 2만 명 수준. 한국마사회는 승마를 대중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국민 말 타기 운동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9년에만 2900명이 무료강습을 받았고, 올해 상반기에는 19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신청은 상반기 3월 초, 하반기 7월 말에 공지된다.

승마의 효과를 지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의 치료에도 활용하고 있다. 지역단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재활승마 치료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한국마사회 승마활성화팀 유성언 차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250만 명 중에서 재활승마의 도움을 받은 수는 매우 미약하다”며 “말 산업 육성법이 제정되고, 재활승마치료사 자격제도가 운영돼 더욱 많은 이들이 재활승마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촬영=Photo di 최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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