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에드 해리스 감독 '폴 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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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천재에게 광기(狂氣)는 무엇인가. 창조의 샘인가 파멸의 문인가. 영화 '폴락'은 천재 화가 잭슨 폴록(1912~1956)의 굴곡진 삶을 그린 전기 영화다.

그는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서양 회화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추상표현주의 미술가. 세상에 안주하느냐 도피하느냐는 물음 때문에 술을 손에서 놓지 못한 그는 정상에 서긴 했으나 스스로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욕구로 인해 생을 불운하게 매듭짓고 만다. 그래서 그를 미술계의 제임스 딘이라 부른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무명화가 폴록에게 함께 전시회를 하게 된 여류화가 리 크레이즈너(마샤 게이 하든)가 찾아온다.

크레이즈너는 폴록의 작업실을 둘러보는 순간 독특하고 화려한 색채에 넋을 잃고 만다. 점차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도 호감을 느낀 크레이즈너는 폴록과 동거를 시작하지만 술에 취해 파티장 벽난로에 오줌을 누고 며칠동안 길거리를 헤매며 걸인행세를 하는 그를 건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트루먼 쇼''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에서 강인한 눈빛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에드 해리스. 1986년 폴록의 전기를 읽고 폴록에 심취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주연은 물론 감독까지 맡았다.

감독 데뷔작이 된 이 영화에서 그는 폴록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연기하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당시의 미술 화법인 액션 페인팅과 드리핑 등을 직접 배웠다고 한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해리스의 연기는 치열하면서도 자연스러워 마치 폴록이 아닌 에드 해리스의 일대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천재화가를 사랑한 비운의 여인 역의 마샤 게이 하든 역시 광적인 화가의 곁을 꿋꿋하게 지키는 극중 역할에 맞게 섬세하면서도 중심이 잡힌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주연 배우 외에 폴록의 후원자로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페기 구겐하임, 폴록의 라이벌이었던 윌렘 드 쿠닝, 당대 미술평론가 클리멘트 그린버그 등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들의 캐릭터를 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그림에 취미가 있는 이라면 영화 속에 나오는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꽤 즐거울 듯 하다.

하지만 영화는 폴록이 괴로워하며 광기를 발동할 때마다 단지 '천재적인 예술가니까'란 이유를 부각한다. 이는 관객이 예술가와 함께 호흡할 길을 차단하는 느낌을 줘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달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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