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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토해 낸 열정, 기교를 넘는 음악 혼 선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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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05면

부활의 노래는 이렇게 의연한가. 그녀의 활이 마지막 음표를 힘있게 내리긋는 순간 음악은 그 내면의 진실을 활짝 드러냈고 회장 안은 환희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4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날 연주회는 공연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음악 애호가들에게 유독 화젯거리가 되었던 콘서트였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복귀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복귀 무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그렇다고 해서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창설 55주년을 맞이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이 미미한 것은 아니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오토 클렘페러 같은 전 세기 최고의 거장들이 재임했던 명문 악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이 갖고 있었다. 어둡고 중후한 울림을 조직하는 독일 오케스트라나 화려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자랑하는 미국 오케스트라에 비해 담백한 음향을 빚어냈다. 첫 번째 곡인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은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단정하고 무난한 연주였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2005년 9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로 계획했다가 손가락 부상으로 급거 내한 공연을 취소했을 때 연주하기로 했다던 레퍼토리였다. 검은 드레스 차림의 정경화가 모습을 나타내자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로 그녀를 맞았다. 관현악의 서주가 시작되며 기대 반 우려 반 심정으로 지켜보는 청중을 그녀는 당당한 카리스마로 일거에 제압했다.

연주는 한마디로 치열했다. 몸이 덜 풀린 탓인지 곡의 포문을 여는 첫 부분은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이내 제 페이스를 찾고 온몸으로 활화산 같은 열정을 표출했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표현을 위해 필요에 따라서는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는 모험을 불사했다. 특유의 예리한 톤은 폐부를 찌르는 듯 날카로웠으며, 5년 전 다쳤던 왼손이 만들어내는 비브라토는 아주 여린 음에서조차 빠르게 진동해 강한 긴장감을 창출했다. 일견 선이 가는 듯하면서도 소리 중심에 굳은 심지가 있어 유약하지 않았다.

물론 정경화의 연주는 테크닉적으로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때때로 음정이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줄 만치 불안정했고, 중음 주법이 깨끗하지 못해 듣기에 껄끄러운 순간까지 있었다. 전성기 시절의 레코드나 실연을 접했던 일부 팬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기술적인 정확함이 곧바로 예술적 완성도와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 무릇 참된 연주자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신을 작곡가의 이상과 융해시켜 살아 있는 정기를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가 감화를 받았다는 요제프 시게티나 노년의 이다 헨델이 그러했듯 말이다. 62세 정경화의 기교는 쇠퇴했지만, 음악혼은 선연했다.

탄식을 토해내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는 2악장에 이어 3악장은 재기에 대한 의지를 승화시킨 해방감으로 휘몰아쳤다. 전 곡을 마치고 나자 상당수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뜨겁게 박수 갈채했다. 그녀는 앙코르로 협주곡 3악장을 다시 연주해 화답했다. 부활과 승리를 피부로 확인한 덕분인지 본 공연보다도 연주가 자유롭고 상쾌했다. 몇 차례 커튼 콜을 받은 뒤 재차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사라방드’를 선보이며 복귀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했다.

휴식 후 연주된 2부 프로그램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4번이었다. 아슈케나지의 접근은 ‘코리올란’ 서곡과 동일했다. 전통적인 독일식 스타일에 기반을 둔 해석으로 네모 반듯한 문양의 기본 음형 위에 건강한 이미지의 화음을 건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음악은 침착한 합목적성을 가지고 또박또박 전개됐다. 그렇지만 아슈케나지는 뜻한 바를 완전하게 달성하지 못했다. 전반 두 악장에서 오케스트라 관 파트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으며, 리드미컬한 운동감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다행스럽게도 후반 두 악장은 추진력을 회복해 시원스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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