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보에 병역·납세·재산·전과 경력 있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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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34면

6·2 지방선거가 본격전에 접어들고 있다. 13~14일 후보 등록을 마치면 20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모두 3991명을 선출하게 된다. 시·도지사 16명과 228명의 시장·군수·구청장, 그리고 시·도의원 및 시·군·구 의원 등이 3893명에 이른다. 여기에 16명의 교육감과 82명의 교육의원도 뽑아야 한다. 3991개의 자리를 놓고 전국에서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후보들이 표밭을 누빌 것으로 중앙선관위는 추산하고 있다. 어림잡아 4 대 1의 경쟁률이다.

이정민 칼럼

뛰는 후보들의 규모만 엄청난 게 아니다. 이들에게 집중되는 권한은 더 막강하다.
우선 지방정부가 1년에 주무르는 재정의 규모는 전체 나라 살림의 절반 가까운 45% 수준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견제와 감시는 허술하다. 민종기 당진군수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 군수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관급공사 7건(102억원 규모)을 한 건설회사에 몰아주고 3억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문제는 이 같은 비리·불법이 한두 건이 아니란 데 있다. 4년 전 치러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기초자치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의 48%가 각종 비위사건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는 집계도 나왔다. 이 얼마나 기가 찬 노릇인가. 내 고장 살림을 맡아 잘 경영해 달라고 뽑아 놨더니 제 살림만 키우고 온갖 비위사건에 가담하는 몰염치를 저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후보들의 옥석을 가리고 자질을 검증해야 할 1차적 책임은 정당에 있다.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내놓기 전 자체적으로 품질 검사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게 정당 정치의 기본이요, 요체다. 정당은 좋은 후보를 내고 투표를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존속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정당이 유권자 속에 뿌리 박고 그 속에서 자양분을 공급받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여야 각 당의 후보 공천 과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정당이 최소한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드는 게 한두 건이 아니다. 국회의원, 시·도당 위원장, 공천심사위원들의 이해가 얽히고설켜 제 사람 심기, 나눠먹기식 공천이 횡행하고 있다. 다음 총선을 염두에 둔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측근을 단체장이나 시·구 의원으로 공천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자임한다. 검은 돈도 오간다. 중앙당의 실력자라는 이들은 이런 어지러운 현실을 보고도 눈감는다. 오히려 당내에서의 입지 강화와 당장 지방선거 이후로 예정돼 있는 지도부 경선 때 한 표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세 불리기에 연연할 뿐이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서 코미디와 해프닝이 속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종기 당진군수 사건이 터지자 바로 공천을 철회하고 “당진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불과 2주 만에 “후보를 내지 않는 건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약속을 번복했다. 여론조사로 후보를 가리는 공천 방식을 택한 민주당은 휴대전화 착신전환 같은 편법이나 휴면전화 회선을 무더기로 사들여 여론을 조작한 후보들이 잇따라 당국에 적발돼 골치를 앓고 있다.

1차 검증을 해야 할 당이 이 지경이니 유권자들이 직접 검증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눈 부릅뜨고 비리 후보, 자격을 갖추지 못한 후보를 하나하나 걸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당 후보라는 데 현혹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과거 지방선거에선 시장·시의원·구청장·구의원 후보에 줄줄이 같은 당 출신을 찍는 줄투표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품질검사를 마치지 않은 불량품이 유명회사 브랜드를 달고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는 게 드러난 이상 브랜드만 믿고 제품을 선택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선 안 된다. 불량품인 줄 알면서도 브랜드에 혹해서 선택하게 된다면 불량품 유통은 영원히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할 때 무엇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선관위의 후보 정보 공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관위의 홈페이지와 선거 공보엔 후보의 병역·납세·재산·전과 경력과 같은 기본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자료로 꽤 쓸 만하다. 전과 기록이 있는 후보, 세금 납부에 문제가 있는 후보, 재산 형성 과정이 석연치 않은 후보들이 있다면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로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귀찮다고 성가시다고 이런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진짜 유권자의 힘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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