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희생과 학대, 부상 투혼의 두 얼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5호 16면

대통령배 결승에서 휘문고에 진 뒤 흐느끼는 덕수고의 2학년생 3루수 길민세(왼쪽에서 셋째).

2006년 6월 독일 월드컵. 한국의 최진철은 조별 리그 3차전에서 스위스의 센데로스에 받혀 눈두덩이 찢어졌다. 최진철은 붕대로 철철 흐르는 피를 눌러 막고 계속 뛰었다. 이보다 4년 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황선홍도, 또 그보다 4년 전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임생도 그랬다.

Sunday Sports Pub

2004년 10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커트 실링은 양키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서 승리를 거뒀다. 다친 오른쪽 발목의 힘줄을 고정하는 수술을 마치고 마운드에 오른 그의 양말이 피에 젖었다. 그해 보스턴은 월드시리즈마저 제패했다.

최진철·황선홍·이임생·실링 모두 한 가지 표현의 주인공이다. ‘부상 투혼’.
피는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굳이 피가 흐르지 않아도 짜릿한 승부를 우리는 ‘혈전’이라고 표현한다. 피는 승리를 향한 갈망에 불을 붙이고, 팀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경기장을 적시는 붉은 피의 의미는 어쨌든 그렇다. 다음의 경우는 어떤가.

5일 열린 휘문고와 덕수고의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 4-4로 맞선 연장 13회 초 1사 2루에서 휘문고 최윤혁이 때린 강한 타구가 3루 옆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되어 갑자기 튀어올랐다. 공은 덕수고 2학년생 3루수 길민세의 오른쪽 귀를 강타했다. 피가 철철 흘렀다. 의무팀에서 뛰어나오고, 경기는 중단됐다.

길민세는 뛰겠다고 했다. 붕대로 칭칭 감고 경기를 계속했다. 하루가 지난 6일 길민세의 상태가 걱정돼 덕수고에 전화를 했다. “꿰맬 정도의 상처도 아니고 비껴 맞아서 머리에 이상 없다. 소독하고 반창고 붙인 정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거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길민세를 그냥 뛰게 해야 했을까. 강한 충격 때문에 3루 베이스 위에서 중심을 못 잡고 한쪽으로 쓰러지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다친 곳은 단지 귀가 아니라 머리 쪽 아닌가. 결과적으로 아무 일 없어 다행이지만, 다친 이튿날까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상이었는데? 학생 스포츠에 학생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승리가 있는가.

덕수고는 올해 대통령배에서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다. 우승을 갈망했을 것이다. 덕수고 3학년 에이스 김진영은 경기에서 진 다음 더그 아웃에서 서럽게 울었다. 길민세도 따라 울었다. 그러나 그날 가장 슬프게 울었어야 할 사람은 결승전을 지켜보던 ‘어른들’이어야 했다. 그들은 길민세를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머리에 붕대를 감아 3루에 세웠다.

자신의 첫 아이가 탄생했는데 “시즌 중이니까 병원엔 나중에 가겠다”고 하는 선수가 프로야구에 정말 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않아도 승부를 위해 당일 등판을 강행한 투수도 정말 있다. 학생 시절부터 배양된 온갖 종류의 투혼은 이렇게 자라고, 이런 식으로 강요당한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승부의 세계에는 희생과 학대가 버무려진 ‘투혼’이라는 괴물이 서식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