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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북한에 할 말은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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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가 지금 경제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병은 북한문제에 대한 정신분열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남북이 왕래하며 무언가 되는 듯싶으면 "그래,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군함에 포격을 했다거나 인터넷을 통해 주체사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너희가 아직 우리를 노리고 있구나" 하며 분개하게 된다. 북한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린 사진을 보면 마음이 짠해 도와주고 싶다가도, 맡겨 놓은 게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큰소리치면 "우리는 왜 봉 노릇만 해야 하는가" 하고 울화가 치민다. 전쟁 걱정만 해도 그렇다. 전쟁은 막아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가 않다.

*** 북한에 대한 정신분열증 심각

'서울 불바다'위협을 고분고분 들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에는 이'로 맞대응을 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북한을 살살 달래야 하느냐, 차라리 북한의 붕괴를 촉진해야 하느냐의 문제도 그렇다. 그러니 머리에 쥐가 난다. 더 심각한 점은 북한문제가 별도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 내부문제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 국가보안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언론법, 과거사법, 사학법도 북한에 대한 태도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정책문제도 마찬가지로 북한과 연관되어 대립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북한에 변화가 생기거나 대량 탈북사태, 북핵위기 등이 닥칠 경우 우리가 먼저 흔들릴 소지가 크다.

갈등 원인은 물론 북한 존재의 양면성 때문이다. 그들은 경계해야 할 적인 동시에 대화와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이다. 김영삼 정부까지는 북한을 경계할 적이라고 보거나 이 양면성을 인정하는 쪽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는 북한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쪽으로 축이 이동했다. 그런데 북한이 정말 달리 보아야 할 만큼 변했느냐는 점에서는 합의가 없었다. 진보 쪽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강조하고, 보수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라가 첨예하게 갈린 이유도 이 점에 대한 국민합의 없이 정부가 대북정책을 밀고 갔기 때문이다. 북한문제에 대해 갈등이 심해진 또 다른 이유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 감싸기 때문이다. 북한이 NLL을 침범해도 비난 한마디 안 하고 우리 해군만 쥐 잡듯하고,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앞장을 선다. 대통령은 북한이 자기의 체제안보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입장을 이해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 안보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가 당연히 나와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데 그 말은 없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나라를 북한에 넘겨주려 하는가"라는 의심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 당근을 주더라도 우리가 뭉쳐 있으면 문제가 없다. 바람직한 건 북한에 대한 견해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외교.국방은 초당적으로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밖의 정책문제는 진보.보수 간 경쟁을 해도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국민적 합의를 본 뒤 북한문제는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식과 국내문제가 범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합의는 어렵지 않게 끌어낼 수 있다. 먼저 공산주의만은 안 된다는 점을 모두가 확인하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든 안보만은 튼튼히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저자세로 나가니까 국민이 믿지 못하는 것이다.

*** "인권 개선하라" 왜 말 못하나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을 하는 편이라고 으쓱대는 대통령이 왜 북한에 대해서는 할 말을 못하는가. "당신들은 핵무기가 체제를 지켜줄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핵은 오히려 당신들을 망하게 합니다. 핵무기에 돈 쓰느라 인민들을 굶기지 마십시오. 인권을 개선하십시오. 우리는 사심 없이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대통령이라면 왜 국민이 믿고 따르지 않겠는가.

북한의 변화에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친북.반북으로 갈라져서는 파도를 헤쳐나가기 어려울 때가 곧 온다. 북한에 대한 정신분열증 상태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그런 시기가 곧 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만은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북한보다 먼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문창극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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