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미국 기업인 도란, 10여년간 인사동 등 뒤져 수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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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란 사장이 사무실에 진열해 놓은 민속품을 꺼내보이며 수집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저분한 고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눈엔 아주 아름답게 보여요. 오래 전 그것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의 숨결 같은 게 느껴져서 작은 장식이나 이음새 하나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죠."

인천 송도 신도시 내 국제업무도시 조성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의 피에트로 A 도란(47) 사장은 한국의 전통가구나 건축도구.농기구 등을 수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도깨비시장'을 연상케 한다. 동대문.인사동.이태원 등의 골동품상이나 벼룩시장에서 산 고가구와 오래된 농기구, 대패.끌.나무망치.칼 같은 목공 연장이 곳곳에 장식돼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거름을 담아 나르는 데 쓰던 나무통은 신문.잡지를 꽂아두는 물건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는 "우리 집에는 여기보다 더 많은 물건이 있다"면서 "너무 많아 몇 점인지 셀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도란 사장의 부인은 한국인(이윤경.46)이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금융학을 공부하던 그는 1984년 버클리 음대에 다니던 동생의 소개로 이씨를 알게 됐다. 때마침 "청소와 관리를 해주면 세를 받지 않는 아파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곳이 이씨의 아버지 소유여서 가족과도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1년 뒤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씨와 만나면서 한국인과 한국 음식.문화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그 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인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이런 기질이 나와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란 사장은 대학 졸업 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부동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91년 한국 부동산 시장을 개척하겠다며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의 옛 물건 수집 취미도 이때 시작됐다.

올해로 한국생활 13년째인 그는 "서울 동대문이나 인사동 거리를 다니며 고물 더미에서 옛것을 사모으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골동품을 보면 한국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즐겁게 살아온 민족임을, 그리고 디자인 감각이 매우 뛰어난 민족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도란 사장은 최근 송도 신도시개발사의 심벌.로고를 한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선자가 재학한 대학에 상금(1억2000만원)을 준다는 조건이다.

그는 도란 캐피털 파크너사 사장.모건스탠리 부동산 펀드의 운영파트너 및 한국지사 상임고문도 겸하고 있다. 두 딸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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